5일장, 시장가는 날

by I rene

오전 7시 20분, 알록달록 곱게 차려 입은 할머니들이 종종 걸음을 걷는다. 할아버지들은 말쑥한 기지바지에 중절모를 갖추고 지팡이도 들었다. 다들 버스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신다. 장날이다. 5일 만에 돌아오는 장날은 어르신들의 외출날이기도 하다.


동네 어르신들 중 차가 있으신 분들은 많지 않다. 버스시간도 하루 세 번 뿐이다. 그거라도 있으니 다행이지만 장에서 볼일을 보고 한 두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돌아오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장날만이라도 순환버스를 운행하면 좋겠다.

장도 보고, 침도 맞고, 안과도 가야 하신다. 미용실도 들르고, 방앗간에서 기름도 짜면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시장에 있는 농협이나 주민센터 휴게실 같은 아지트에서 남는 시간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신다.


버스에서 간혹 어르신들을 마주칠 땐 먼저 인사를 하는데 매번 “어디서 본 분인가” 물어보신다. 옆동네 분들은 장날이나 되어야 뵐 수 있으니 얼굴이 떠오르지 않나 보다. 시장이나 병원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다. 한동네 사람이란 건 뭔가 한식구 같은 느낌이다. 오가다가 길에서 차를 태워드릴 때면 요구르트나 과자를 답례로 주시기도 한다. 무엇을 받든지 늘 되갚아야 마음이 편하신 모양이다.


장날은 2일과 7일이다. 이사 온 뒤 5일장은 여러 번 가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떡도 있고, 꽃모종도 많이 나온다. 남편은 농산물에 관심이 많아서 구경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 장날엔 사람 반 물건반이다. 손수 키운 농산물이 대부분이다. 가격이 저렴하기도 하지만 신선한 것이 장점이다. 흥정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고 덤도 있다.

어물전에서 생선을 살 때면 집에 있는 개와 고양이를 주기 위해 부산물을 얻어 오기도 한다. 5일장 구경을 가고 난 뒤엔 시장가는 것도 재미가 있다.


남편은 운전을 하지만 늘 바쁘기 때문에 시내에 한번 갈라치면 이런저런 볼일들을 굴비처럼 엮어서 가야 한다. 그래서 늘 허둥지둥 다니다 보면 일을 빼먹기가 일수이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나에게 하루 세 번 다니는 버스는 차시간이 너무 이르거나 느려서 그림에 떡이고, 남편을 대동하고 가는 일도 녹녹하지는 않다. 한번 여유롭게 정해진 시간 없이 느린 장을 보는 게 바램이다.


시골 와서 제일 불편한 것이 동네에 가게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과자라도 먹고 싶을 때는 장을 보러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 번거로운 마음에 한번에 많이 사다두기도 했지만 이내 바닥이 나버렸다. 아이들에게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이 있는 듯 했다. 당장 먹고 싶어도 바로 채울 수 없어 욕구가 쌓이지 않았을까.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간식을 사다가 여기저기 숨겨 두곤 한다. 기억력이 나빠진 탓에 어디 뒀는지 잊어버려 못찾기도 하고, 우연히 발견해 횡재하기도 한다.


도시에서는 물건 구하기가 너무나 쉽다. 조금만 걸으면 마트가 즐비하다. 대부분 대형마트여서 없는 것이 없다. 대형마트에 가면 식료품에서 옷까지 한번에 구매할 수 있으니 편리한 맛에 마트를 이용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도시에 살면서 시장에 간적이 드물다. 사람들 많은 틈을 뚫고 다니는 것도, 여기저기 물건을 찾아다녀야 하는 것도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번잡한 일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시장구경하는 맛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린시절 시장근처에서 살았는데, 아래 시장은 옷과 생활용품을 팔고 윗시장에선 생선과 채소를 팔았다. 시장 끝에서 끝까지 아이 걸음으로 30분은 족히 구경할 수 있는 거리였다. 심심할 때면 엄마가 계신 시장까지 놀러가곤 했다. 이것저것 물건 구경하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그 맛을 5일장에 가서 다시 느끼게 되었다.


나이드신 어르신들은 작은 물건 하나라도 장에 가서 고르는 맛이 훨씬 낫다는 걸 아신다. 젊은 사람이야 밖에 나가기 귀찮으니 택배로 주문하는 게 편하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지고 오감을 쓰는 물건 고르기의 기쁨은 아는 사람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장에 가면 사람냄새가 난다. 열심히 사는 활력이 느껴져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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