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기와 갈무리, 잘 먹고 잘 살다.

by I rene

열매가 무르익어 주인을 기다린다. 서로 먼저 거둬주길 바라며 아우성친다. 여름내 토마토와 가지, 애호박이 풍년이었다. 열무와 당근, 쪽파도 제 할 몫을 다하였다. 모두 맛있는 열매를 내주어 우리의 피와 살이 되었다. 감자는 우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이라 이리저리 한 상자씩 보내주었다. 돈을 받고 파는 것은 아니었지만 ‘잘 먹었다, 고맙다’ 한마디의 정을 나누는 것이 농부에겐 힘이 되었다.


수확물을 거두면 싱싱할 때 먹고 나누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생물이라 금방 시들어져 버린다. 농협 택배는 다음날 배달해주니 걱정이 없다. 다만 적당한 박스를 구해서 포장하고 발송하는 것이 일이다.


남편은 거둔 열매 중 제일 좋은 것만을 골라서 보낸다. 고생해서 수확한 것인데 우리도 큰 것 좀 먹어보자며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내가 무엇을 받아도 똑같은 입장일 것 같다. 나누고 남은 것은 박스에 담아 창고에 보관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양파도 감자도 오래두니 싹이 나버려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도 생겼다. 이럴 때 우리가 초보구나 현실감이 든다.


채소는 거의 밭에서 나는 것으로 자급자족할 정도가 되니 농사하는 보람이 생겼다. 요리할 때 뭔가 필요하면 텃밭에서 뚝하고 꺾어 오면 그만이다. 갓 따낸 채소는 왠지 더 맛이 좋은 것 같다. 닭장에 여섯 마리 정도 닭을 키운다. 올해엔 제법 알을 낳고 있어서 계란도 해결이 되었다. 아이들은 키우는 닭의 알을 먹는 게 이상했는지 줄때마다 산 것인지 낳은 것인지 물어보곤 한다. 직접 키워먹는 게 좋은 것이라는 걸 모르는 것일까. 마트에서 사먹는 포장된 깔끔한 제품들이 더 나아 보이는 모양이다.


가지볶음을 좋아해서 올해엔 모종을 제법 심었다. 그런데 가지가 달리기 시작하니 먹고 나누어도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가지를 나무에 오래 두면 딱딱해지거나 터져버려서 먹기가 어렵다. 아까운 마음에 일일이 썰어서 말려야 했다. 열 개이상 썰어봐야 마르면 한줌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말린 음식이 더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수고를 들여도 별로 표가 안 나지만 겨울철 먹거리가 귀할 때 빛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방울토마토는 오랫동안 열매가 맺혀서 오며가며 따먹는 간식이 되었다. 작년엔 된장국 끓여 먹는 용도로 근대를 심었는데 겨울에 뽑지 않고 두었더니 키가 1미터는 족히 자라 씨앗 풍년이 되었다. 채소는 그냥 먹는 것이 다가 아니라 내년을 위해서 씨앗을 채종해 두어야 한다. 씨받을 것은 꽃을 피우고 튼튼한 한 두 그루만 남겨 놓으면 충분하다. 덕분에 잘 간수한 씨앗을 올해에 이어 심을 수 있었다.


어르신들 중에는 씨앗을 사지 않고 이렇게 대물림해서 쓰시는 분들이 많다. ‘종자 주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다국적 종자기업들이 토종종자를 대항해 여러 가지 GMO 씨앗들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다. 종자전쟁은 아직 진행 중인 이슈이다. 씨앗을 잘 갈무리하는 습관만으로도 먹거리를 지키는 밑받침이 될 것 같아 올해는 더 열심히 씨앗을 거둬 두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알게 모르게 먹을 수 있는 약재나 식재료가 많다. 물론 모르면 풀이고 알면 약이다. 그래서 책을 보거나 물어보거나 열심히 배워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자연이다.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를 따라잡기란 쉽지 않겠지만 부지런히 좇아가야 먹을 것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제야 조금 이해한다. 예전에 엄마는 왜 늘 불앞에서 떠날 줄 모르고 삶고 말리고 얼리고 했는지, 시댁의 냉장고는 왜 3대나 되는지. 아무리 풍성히 거두어도 갈무리를 해두지 않으면 두고두고 신선한 먹거리를 먹을 수 없는 이치 때문이다. 어머니는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자식들에게 나눠줄 양으로 그렇게 쉼 없이 사셨다는 것을 이제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식물은 그렇게 수고와 정성이 담겨 있다는 걸 잠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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