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차차, 작은 생명이 떠나다.

by I rene

두 남매는 휑한 시골 앞마당에서 빙글빙글 자전거를 타고 논다. “자전거는 재밌어, 근데 친구가 없어 좀 심심해.” 동네엔 아이들이 있는 젊은 가정들이 없기 때문이다. 아빠는 아직 농사를 시작하기전이라 지인께 소개받은 공장에 가기로 했다. 퇴근하는 아빠를 오매불망 기다려서 신나게 놀아야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시골 오면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겠다고 장담했던 남편이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롯이 둘이 놀아야 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서 강아지가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살 만한 형편은 되지 않고 고민하던 어느 날, 동물병원에서 유기견 한 마리를 데려오게 됐다. 태어난 지 2개월 된 믹스견. 큰아이는 강아지를 좋아하면서도 연신 겁을 냈고 막내는 스스럼없이 강아지를 만졌다.


자동차 타고 우리 집에 왔다고 ‘차차’라고 지어줬다. 차차는 우리집 아이들과 잘 어울릴만한 활발한 강아지였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하지만 버려진 강아지여서 그런지 사람을 따르는 애교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시크하고 에너지 넘치게 길들여지지 않은 존재였다. 물론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우리도 그냥 저 하는 대로 두었다. ‘공존하되 서로 불편하지만 않으면 괜찮다.’ 그것이 반려동물에 대한 내 원칙이었다. 서로 잘 돕고 살면 되는 것이다.


차차가 집에 온 지 3일되던 날 뭔가 좀 이상했다. 사료도 먹지 않고 비실대고, 토하고 누워서 꼼짝할 생각을 안 했다. 동물병원에 가니 위험한 장염이란다. 입원해도 나빠질 수 있다고 했다. 하루 입원비가 10만원, 감당하기 어려워서 하루만 입원하고 주말엔 집에 있기로 했다. 그날 밤 차차는 밤새 끙끙 앓았다. 방문 앞 작은 복도 한구석 종이 상자 속이 추울까봐 난로도 틀어 주고, 이불도 덮어 주었다. 이미 초점 잃은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신음소리가 끊길 때면 잘못될까 하는 맘에 열두 번도 더 들락거렸다. 새벽녘 “깨깽”하는 날카로운 울음 뒤에 이내 잠잠해졌다. 동물이 바로 곁에서 떠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남편은 이미 새벽출근을 한 후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지.


그렇게 일주일도 안되는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차차는 하늘로 가버렸다. 아픔없는 곳으로 갔으니 잘 쉬라고 고이 수건에 싸서 뒷밭에 묻어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작은 장례식을 했다. 나무 십자가도 세워주고 짧은 편지도 써 주었다. ‘잠시지만 우리 곁에 함께 해 주어 고마웠다고..’ 아이들은 한동안 차차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별은 언제나 슬픈 것이다. 좋은 곳에 갔다고 위로해 보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살면서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한다. 어떤 이들은 먼저 하늘로 갔다. 큰오빠, 할머니, 형부, 아버지, 엄마 그리고 짧은 인연 ‘차차’까지. 세상에 아프지 않은 헤어짐은 없다. 마음을 준다는 건, 어쩌다 홀로 남겨 졌을 때 슬픔도 각오한다는 뜻이 아닐까. 다만 아픈 것을 다독일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어느 날 아이들이 문득 이야기 했다. ‘엄마, 차차는 하늘에 별이 되었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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