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에 친척 형님네 가족들이 부모님 댁을 찾아왔다.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코로나 이후로 처음 만났다.
그동안 명절 당일에 몇 번 부모님 댁을 방문하셨다고 하는데,
나는 늘 같은 날 처갓집으로 가서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리 처가를 다녀온 덕분에
시간이 맞아서 만나게 되었다.
형님 아들 녀석이 이번 4월에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들고 왔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 왔던 아이라 벌써 30대가 넘어 결혼을 한다고 하니,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오래간만에 형님네 가족들과 모여서 여러 가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중에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었다.
한국전력에 다니셨던 형님은 늦은 나이에 아이를 얻었다.
그래서, 아이가 대학교를 마칠 때면,
자신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계산해 보셨단다.
남자라 군대 다녀오는 것까지 계산에 넣고 보니,
대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정년이 찾아 오더란다.
그래서 관리자로만 있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하셨다.
40대 때부터 기술직으로 방향을 바꾸시고는,
각종 자격증을 따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다.
기술 자격증과 박사학위로 인해서
여러 곳에서 강의도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 노력과 강의 경험으로,
정년 전에 회사를 떠나야 했지만,
한전 자회사로 쉽게 옮겨 갈 수 있었단다.
거기에서도 강의를 이어갔고,
영어 강의도 하는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그 자회사에서 정년을 맞았지만,
그동안의 쌓은 자격증들, 박사 학위 그리고 영어 강의도 가능하다는 능력을 인정받아
에너지 관련 분야 대기업에 다시 취직이 되어,
60이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현장을 누비고 계신단다.
형님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다.
형님보다 더 늦은 나이에 아이가 2명이나 태어났는데도,
나는 나 자신의 미래를 그리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미래를 그릴만한 생각의 힘이 부족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을 강물 흐르듯 떠나보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책을 읽고 글을 적기 시작하면서
생각의 근육을 조금씩 키워 나가고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통장 잔고도, 살고 있는 집도
모두 다 자신의 방패가 될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선 책을 읽고 글쓰기부터 시작해 보자.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신이 가야 할 미래를 설계 한 사람들이 많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늦은 때란 없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