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는 아내의 학원 마지막 수업 날이었다.
임신 전부터 다녔고,
아이들 태어나고 잠시 공백이 있었지만,
이후에 다시 복귀하여 지금까지 다녔다.
아내 말을 빌리자면,
청춘을 다 받쳤다고 하더라.
마지막 수업은 중학생 수업이었는데,
수업 시간이 끝나자 아이들이,
"쌤, 수업 더 해 주세요!" 했단다.
평소에는 5분만 지나도 빨리 끝내 달라고 했던,
아이들이었는데, 아쉬웠나 보다.
수업이 끝나고,
아내가 한 명, 한 명 꼭 안아 주면서,
학생들도 그리고 아내도 펑펑 울었단다.
지금은 중학생이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수업을 들으며 함께 했으니,
그 쌓인 세월의 깊이만큼 헤어짐의 슬픔도 진했을 거다.
그리고 어떻게 알고 왔는지,
대학생이 된 학생들도 찾아와서,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여전히 세상은 따뜻한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나도 선생님하고 헤어질 때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다.
담임 선생님은 미혼의 20대 중반으로 선생님치고는 너무 젊으셨다.
그 당시에는 남자 선생님들한테는 당직 근무라는 것이 있었다.
학교 숙직실에서 한 번씩 잠을 자며 학교 순찰을 도는 거였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께서는 나이도 젊고 결혼도 하지 않으셔서,
토요일 당직을 자주 맡으셨다.
선생님께서 토요일 당직 근무를 하시는 날에는,
같은 반 남자 몇 명이서 학교에 가서,
선생님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께서는 음악을 참 좋아하셔서,
곁에는 악기와 악보 책이 늘 있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악기 연주하는 법도 알려 주시고,
노래도 알려 주셨다.
(악기 이름은 생각이 안 난다)
그때 배운 노래들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노래들이 있다.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아름다운 것들'이다.
선생님께서 대학생 때 배운 노래들을 알려 주셨을 거다.
그 당시 초등학생 중에 이런 노래들을 아는 학생은,
우리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선생님께서는 저녁 늦은 시간이 되면,
집으로 가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당직실에서 자고 가겠다고 졸라 댔다.
물론, 집에 전화를 해서 부모님 허락도 받았다.
처음이 어렵지 한 번 자게 되니,
이후부터는 아예 토요일 오후에 학교에 간다고 하면,
1박 2일 일정이 돼버렸다.
밤에는 배가 고프니 라면도 함께 끓여 먹고,
비디오도 빌려 와서 깜깜한 교무실에서 보기도 했다.
무서운 공포 영화도 빌려서 봤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날에는 장난기 많은 선생님께서,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 등 뒤로 몰래 와서는,
"와" 하고 소리치셨다.
그러면, 다들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곤 했다.
선생님의 장난은 이뿐만이 아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다들 얼굴에 낙서 하나씩은 되어 있었다.
자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얼굴에다 콧수염도 그려 놓으시고,
멋진 안경도 하나 그려 놓으셨다.
이런 일들이 학년 내내 이어지다 보니,
선생님과 아주 깊은 정이 쌓였다.
때로는 선생님이 아닌,
대학교 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새 5학년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수업 시간 시작부터 교실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었다.
반 학생 모두가 울었다.
이 모습을 보신 선생님께서도
우리를 등지고 칠판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선생님께서 전근을 가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는 것도 아닌데,
그때는 그렇게 슬펐다.
내 인생의 이별 중에 가장 슬픈 이별로 기억되고 있다.
만남은 이별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마지막 이별을 생각하며 만나는 일은 없지만.
이제는 25년 과도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25년 첫날의 만남 때 가졌던 설렘, 기대, 희망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12월 마지막 달은,
25년을 떠나보내고,
26년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