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잎 밥상 앞에서 쓰다
낚시해서 회를 뜨고 우영팟에서 딴 콩잎 깻잎으로 상차림을.. 했다고 자랑질하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다. 회는 동네 항구에서 떠 오고, 푸성귀는 농협 마트에서 샀다. 심지어 생선의 진짜 이름도 모른다. 어부님이 지금 제일 맛있는 갯자리라고 했는데 여기서만 부르는 이름인지 검색해도 안 나온다.
깻잎 사려고 마트에 가니 콩잎이 나왔길래 냉큼 샀다. 제주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도새기는 멜젓에 콩잎”은 아니지만 나름 여름 밥상이 되었다.
제주 어른들은 육지 아이(자기보다 어리면 그냥 아이다.)가 콩잎을 먹으면 꼭 한 마디씩 한다. 제주 아이도 아닌데 콩잎 먹을 줄 아냐고. 제주 사람들만 콩잎을 먹지 육지선 안 먹는 걸로 알고 있다.
제주는 전라도에 속해 있던 때가 있었고, 뱃길이 가까우니 왕래도 많이 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그렇다. 말에도 전라도 억양이 제법 있고 비슷한 음식도 많다. 콩잎을 안 먹는다는 ‘육지’는 전라도를 말하는 것이겠다.
경상도 강원도에서는 콩잎을 먹는다. 경상도는 된장박이를 많이 먹고 산쪽 동네에서는 간장 장아찌를 담가 먹기도 한다. 부산이 고향인 내 친구가 전라도로 시집을 갔는데 전라도 사람들은 오만 풀을 다 먹으면서 콩잎만 안 먹더라고 신기해했다. 그 얘기를 한 번 했더니 영감탱이가 너네 동네에서는 소나 먹는 걸 먹냐고 해서 밥상머리 하극상이 일어날 뻔했다나.
전라도 사람들은 콩잎은 잘 먹는 소한테 줬다. 소는 농가의 귀한 재산이었으니 잘 먹이고 돌봤을 거다. 콩잎은 소나 먹는 풀이라는 말은 귀한 소가 좋아하는 고마운 풀이라는 의미를 담은 반어가 아닐는지.
확실히 서울 살 때 콩잎을 먹은 기억은 없다. 부산에 이사 가니 오이지와 토란을 먹지 않고 미더덕 된장찌개와 콩잎지를 먹더라. 여우를 여시라 하고 엄마, 오빠한테 ‘엄마 니’, ‘오빠야 니’라고 반반말을 하는 것보다 뭔가 뒤죽박죽인 듯한 밥상이 더 신기했다. 친구들은 나의 ‘언니야’를 킬킬거리며 따라했지만 소심한 나는 ‘언니 니’를 따라하지는 못했다. 언니한테 개긴다고 맞을까 봐. 속으로만 하고 실제로는 언니야, 여기 애들은 생일에 콩밥 싸온다? 따위 신기한 얘기를 나눴다.
음식솜씨가 좋아 반찬을 나눠주곤 하던 엄마 친구는 콩잎지를 잘 담갔는데, 덕분에 나는 깻잎보다 콩잎을 더 좋아했다. 깻잎처럼 매운(향이 센) 맛이 없고 고소했다. 가끔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오는 콩잎은 대개 된장박이라 간장 장아찌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때 이후로는 못 먹어봤다. 예상되는 결과가 무서워 직접 담글 수도 없다.
제주에서는 생콩잎에 멜젓에 찍은 도새기를 싸서 먹는다. 여름에 동네 고깃집에 가면 상추 깻잎 대신 콩잎을 준다. 관광객으로 보이면 멜젓을 내놓지 않는 곳도 있는데, 달라고 하면 “제주마씸?(제주사람이군요?)” 씩 웃으며 갖다 준다.
밥상머리에서 갑자기 사진을 찍는답시고 안 하던 짓거리를 하다가 고냉이들한테 저녁을 뺏길 뻔했다.(왜 우리집 고냉이들은 풀까지 뜯어먹는가.) 간신히 사수해서 무사히 먹었다. 이름은 몰라도 회는 맛있었고, 어린 콩잎은 부드럽고 향긋했다. 밥상은 모양새가 어떻든 모두 귀하고 절실한 것인데, 그 고귀함을 만드는 건 그릇수가 아니라 차린 이야기다. 멀고 긴 장소와 시간을 거쳐 도달한 음식의 여정이 우리를 살찌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