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꽃 앞에서 쓰다
태어나서 먹어본 양배추 중 제일 맛이 없었다.
없어도 너무 없었다.
스티로폼으로 만들어놓은 양배추 모형을 잘못 사 온 게 아닐까 싶었다.
어디서 사긴. 마트에서 샀지.
제주 이주했다고 다 귀농귀촌은 아니다.
셋살이에 우영팟 한 뼘도 없다.
뭣보다 뭘 키우는 재주가 없다.
다육이와 선인장을 키워도 꼬치꼬치 말라 죽는다.
파뿌리쯤은 키워보려다 그도 실패.
그냥 마트서 사 먹는다.
샐러드로 먹으려고 샀는데 드레싱 묻힌 스티로폼 씹는 거 같았다.
버리긴 아까워서 스크램블에 넣었는데 볶아도 맛이 없었다.
기름샤워를 해도 맛이 없다니.
올리브 오일도 발사믹도 기적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도 삼천 원이 아깝다는 집념과 먹을 걸 버릴 수 없다는 근성 하나로 꿋꿋이 버텼다.
온갖 요리법과 양념의 도움을 받아 천팔백 원어치 정도는 먹어치웠다.
매일의 요리실험에 지쳤을 때 좀 쉬었다.
하루? 이틀? 그 틈에 양배추가 꽃을 피웠다.
뭐라 해야 할 지 몰라 멀뚱멀뚱 쳐다만 봤다.
간낭꽃이 피었다.
놈삐꽃, 세우리꽃, 보로꾸꽃, 간낭꽃.
서울촌년은 첨 보는 꽃 보고 이쁘다며 좋아라 했었다.
나중에 알았다. 농작물은 꽃이 피면 못 먹는다.
수확을 포기한 밭만 꽃밭이 된다. 슬픈 꽃밭이다.
열매의 이름으로만 부르고 꽃으로 부르지 않는 식물의 꽃이 왜 슬픈지.
꽃이 피면 왜 못 먹는지 따져보지 않았다.
양배추를 장바구니에 담아 집에 가져왔을 때, 꽃을 품고 있었나 보다.
온몸이 이미 꽃을 피우기 위한 모드로 들어가 있었다.
모든 영양과 에너지를 꽃을 피우는 데 쏟았을 테다.
뿌리도 없이 물도 없이 피운 꽃이다.
이 끈질긴 생명의 힘에 붙일 말이 없다.
맛없는 살을 더는 잘라먹지 않았다.
꽃값이 아깝지 않았다.
**간낭-양배추, 놈삐-무, 세우리-부추, 보로꾸-브로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