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신고 쓰다
작아서 못 신는다며 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이런 이쁜 선물을 주진 않잖아? 받을 때도, 신을 때마다 기분 좋은 선물이다.
전시장의 신발, 을 찍으려다 보니 양말도 바지도 다 받은 거다. 선물 받은 양말과 엄마가 만들어준 바지. 신기하네 했는데 메고 있는 가방은 동생이 준 거, 안에 든 지갑도 언니가 준 거, 책은 저자에게 받은 사인본.
누군가가 선사한 물건이 이 정도인 줄, 내가 받은 마음이 이리 많은 줄 모르고 살고 있었구나. 사람이란 타인의 선의로 살아간다는 걸 알고 있다 여기면서도.
자주 연락하고, 계정에 놀러 오던 이들 중 요즘 들어 뜸한 몇이 있다. 그들은 사소하고 귀찮은 갈등을 겪고 있는지 모른다. 이 인간이 전시를 한다는데 가줘야 하나, 너무 멀고 시간 내기 어려운데, 안 가면 못 간다고 기별이라도 넣어야 하나, 굳이 안 해도 되겠지, 아닌가 서운해 하려나..블라블라..
단순히 바쁘고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나라면 그럴 거 같다는 얘기다. 이 죽일 놈의 낯가림 때문에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면 갈까말까, 만나더라도 인사를 할까말까 엄청나게 갈등한다.
유명인의 유명전시가 아닐 땐 더하다. 유명한 전시는 나 하나쯤 안 가도 원망을 살 리 없고 인파에 숨어 몰래 다녀올 수도 있다. 따로 인사하고 도록만 구입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 전시에 오지 않는다 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멀리 있고 바쁜 이에겐 안 와도 된다고 먼저 말해두기도 한다. 절대 빈말이 아니다. 나중에 여유 있게 만나. 축하한다 말해줘서 고마워.
지난 전시 때의 기억. 딱 한 명,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전시에 온 이들은 다른 사람 이름을 얘기하곤 한다. 만나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뜩이나 좁은 제주라서 아는 사람이 서로 많이 겹친다. “누구랑 같이 오려고 했는데 못 왔어.” “아무개가 인사 전해 달래.” “누구씨는 왔다 갔어?” 자주 언급되던 누구씨 중 한 명, W.
W의 전시에 매번 갔고, 무언가 구매를 했다.(전시에 가면 뭐라도 사줘야 할 것 같다는 고민도 갈등요인 중 하나다.) 몇 번인가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전시장은 우아하지만 그렇게 설치하는 일은 노가다다. 일손이 꽤 필요하고, 대개는 지인들의 손을 빌린다.
큰 도움은 못 될지언정 잔심부름이라도 해주려 설치장에 갈 때 친구들은 묻기도 했다. “너 전시할 때도 그 사람이 오니?”
W는 한 번도 온 적이 없다. 설치장도 전시장도. 바란 건 아니다. 내가 한 만큼 너도 도와달라 생각한 적 없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수눌음(품앗이)인 것도 맞다. 서로 잔치에 가주고 축하해주고. 사람의 살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
W는 나를 자기 팬으로 여겼던 것 같다. 자기 작품을 보러 사람들이 오는 건 당연한가 보다. 이제 와 말해봐야 심술 같지만, 그의 작업은 내 취향이 아니다. 다음 전시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한 만큼 안 해줬다고, 안 오고 안 사준 게 서운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애초에 전시에 ‘와주고’ 책을 ‘사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런 게 정말 ‘주는’ 건가. 그에 대한 호감이 꺼진 건 빈말이 잦고 약속을 어겨서다. 마음이 없으면 말을 말아야지. 안 왔다고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매번 내탓으로 돌리지나 말지. 별 뜻 없이 한 말이라고? 적어도 나한테는, 뜻 없이는 말하지 말아 줄래요? 당신 말만 믿고 기다렸잖아요.
다시 신발 얘기. 이 예쁜 신발을 선물해준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어 사진을 찍었는데 별로다. 실물이 훨씬 예쁜데. 일더미에 치어 사는 D가 전시에 안 온대도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 D는 내 팬이 아니라 친구고, 축하는 마음이다. 같이 있는 기분으로 사부작사부작 한바퀴 돌았다. 너의 마음이 여기 잘 도착했어. 축하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