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앞에서 쓰다
저금낭, 저금타는낭이라 한다.
‘저금’은 간지럼이다.
나무 표면, 특히 벗겨져 하얀 부분을 긁으면 꼬불꼬불 할망 지팡이처럼 생긴 줄기가 움찔거리다 이내 잎이 와사삭 흔들린다. 그 모습이 꼭 간지럼 타는 것 닮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꽃이 오래 피어 백일홍으로 통한다. 나무가 아닌 꽃 백일홍과 구분하려 목백일홍이라 한다. 이름대로 칠월에서 구월까지 피고 지며 오래 꽃송이를 달고 있다.
제주에서 만난 나무 중 특히 좋아하는 두 그루가 있어 팔월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가 이들을 만났던 게 팔월이어선데, 칠월도 한참 남은 지난 달부터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 달을 넘게 기다리면서 느긋하려니 쉽지 않았다. 언제 비가 올지도 몰랐다. 팔월 초엔 비가 잦다. 아침부터 무더웠던 어제, 서쪽으로 갔다. 과랑과랑한 조직벳 아래 붉은 꽃 단 나무를 만나고 싶었으므로.
언제 기억인지 모르겠는데, 사람 많은 곳에서 외할머니와 둘뿐이었다. 낯 가리느라 할머니 엉덩이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원피스 자락을 두 주먹 가득 쥐고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손 아래서 자글자글한 주름이 헤실헤실 출렁거렸다.
이 나무를 처음 본 날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약한 바람에도 헤프게 출렁이며 웃는 꽃송이들. 달착지근한 체취가 나고 주름치마가 출렁거렸다.
저금타는 나무라고 저금낭.
동네에 배롱나무가 많지만 이 아이가 보고 싶어 예까지 왔다. 처음 본 날에도 수줍지 않고 헤프게도 웃어주던 나무라서. 사진을 찍어보려 했지만 꽃송이가 가만히 있질 않아 쉽지 않았다. 포기하고 그냥 같이 웃었다. 외할머니도 웃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