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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Aug 12. 2022

우체국 가는 길 혹은 집에 오는 길

마실 중에 쓰다



우체국은 차로는 오 분, 걸어서 삼십 분쯤 걸린다. 왕복 한 시간 운동 삼아 걸어 갔다 온다. 맨날 그런다는 건 아니고, 마침 차가 말썽이고 허리도 말썽이라. 며칠 전부터 급격히 쿨럭거리며 노환을 호소하는 차는 자리보전시키고, 디스크에는 걷는 게 제일 좋다 하니 마침 맨날 미루던 운동을.


사실 걸음이 빠른 사람이라면 절반의 시간밖에 안 걸릴지도. 워낙 느린데다 여기저기 한눈을 팔아야 해서. 맨날 다니는 길인데 예쁜 데는 맨날 예뻐서, 같은 사진을 맨날 찍는다.


이 집 대문, 저 집 담벼락, 기웃대다 보니 한 시간을 훌쩍 넘었다. 아아 덥다 더워 얼른 들어가 샤워해야지, 집이 나타날 때쯤 급한 맘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열쇠가 없는 거다! 클났다. 폰 꺼내면서 빠뜨렸나? 아니지 그럼 소리가 났을 텐데. 바닥 푹신한 데서 떨어뜨렸나? ..아! 거긴가?!


지나온 동선의 기억을 마구 헤집으며, 까딱이인형처럼 온 머리를 두리번대며 되짚어 걷는데, 열쇠 비슷한 것도 안 보인다. 어디까지 가야 하지? 못 찾으면 어쩌지? ..잠깐!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열쇠를 넣은 순간의 기억이 없는 거다.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혹시..?


다시 뒤돌아 걸었다. 절대 뛰지는 못하지만 필사적으로 물렁다리를 움직였다. 안 잠그고 나온 거냐, 나?!!


집에 훔쳐갈 만한 건 없지만, 맘만 먹으면 문을 열 줄 아는 약은 고냉이가 있다. 요즘 밖에 안 내보내 줘서 약이 바싹 오른 녀석이 탈출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열린 문 틈으로 텅 빈 집을 발견하는 일이 없기를. 고냉이는 평소대로 낮잠을 즐기고 있기를. 제발..!!


흘러내린 땀이 눈 안으로 들어가 눈물을 흘리는 모양새로 돌아왔다. 드디어 지붕이, 올레가, 마당이 보이고, 새시 현관이..?


나쁜 시력에도 한눈에 들어오는 나의 고래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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