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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Aug 18. 2022

우체국 가는 길인 척하고 세탁소 다녀오는 길

세탁소에 다녀와서 쓰다

“맡기신 세탁물이 완료되었기에 알려드립니다.”


웬일로 알림을 보냈네. 묘하게 감탄하면서도 차일피일했다. 사실 문자를 받기 한참 전부터 찾으러 가야 하는데, 생각만 하던 참이었다. 맡긴 지 한 달은 거뜬히 지났으니까.


다른 데는 다 됐으면 되었다고 연락을 해 주던데. 맡기고 오면서 구시렁댔던 터였다. 이 세탁소를 이용하는 동안 한 번도 알림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거다. 어림짐작으로 며칠 뒤에 갔다가 몇 번이나 허탕을 쳐서 대단치는 않지만 불만이 쌓였다.


여기랑은 뭔가 안 맞단 말이야. 다른 세탁소가 있으면 좋을 텐데. 맡기는 세탁물에 고양이털 묻혀 왔다고 한참 잔소리를 듣고 나오며 한 달 전에도 한숨을 쉬었더랬다. 빨래 맡기면서 애벌빨래 해 오라는 거야 뭐야? 삐죽삐죽 궁시렁궁시렁.


집 근처에 있는 세탁소라면 상관없었을 거다. 오며가며 들러서 맡긴 옷이 다 되었는지 물어보고 찾아오면 된다. 갑작스런 휴무안내에 당황하는 일도 없을 테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고 와야 하는 탓에 생기는 작은 불만이다. 시골살이 중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이 부분이다. 어디를 가려면 차가(아니면 시간이) 꼭 필요하다. 세탁물을 맡기고 찾을 때도 부러 짬을 내어야 한다. 세탁소 가는 게 일이 되는 거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옆 동네 세탁소는 우체국 길 건너 옆에 옆집이다. 우체국 가는데 삼십 분 쯤 걸리니까 세탁소는 삼십이 분 쯤 걸린다. 차로는 십 분이면 충분하긴 하지만, 이 집과는 이상하게 뭔가 안 맞는다. 올 때마다 급한 일로 문을 닫았거나 맡긴 옷이 되어 있지 않아 허탕을 친다. 이번처럼 뭔가 잔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 부분의 얼룩이 덜 빠졌는데 그건 바로 조처하지 않은 탓이라고. 이 옷의 색이 이리 변한 건 잘 세탁했지만 보관을 잘못 해서라고.


그래서. 두툼한 옷이라 당장 입을 일 없다며 자꾸 미뤘는데 언제까지 그럴 순 없는 일. 비장한 결심으로 물통과 가방을 챙겨 나섰다. 세탁소 가는 거 아니고 운동하러 나온 척하다가 슬쩍 들르겠다는 심산이었다. 땡볕에 왕복 한 시간 사 분 걷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걸음이라도 가볍게 가자는. 비 오기 전에 다녀오자고 나선 그제 마실길이었다.


막상 걷기 시작하니 자리보전하고 있는 차에 대한 걱정도, 우산을 잊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도 총알같이 날아감. 여기 기웃 저기 한눈 혼자 실실댐이 시작됐다. 몰라 어떻게 되겠지. 비 오는 거 맞아? 맑기만 한데? 하늘 색깔 보소.


놀멍쉬멍 걸었더니 세탁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 시간. 여름휴가 가셨다는 쪽지. 아아 안 맞아, 정말 안 맞아.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완벽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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