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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Aug 20. 2022

안 해 봤던 일2

갈치조림을 먹다 쓰다

갈치상자를 건네면서 한 말은 “냉장고에 자리 있어?”, 그에 대한 내 대답은 “나 생선 손질 못하는데”였다.


모름지기 제주살이라 하면, 마당에 귤나무 심고, 바다 오름 유유자적 산책 다니고, 밤낚시를 취미 삼고 사는 법.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도 있는 건 아니겠지?

천혜향 옥돔 성게 물리지 않을 만큼 먹고, 냉동실엔 갈치 고등어 생선이 가득하다고?


그럴리가 있겠어?


아니 , 그런 옥수저도 있긴 하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아니라서.


귤 - 돈 주고 사 먹음.

성게 방어 - 돈 주고도 못 사 먹음.

망고 땅콩 - 딱 한 번씩 먹어 봤음.


..그러하다.


나물은 나물이고 생선은 생선인 나에게 숙제 아니 선물이 들어왔다. 다행히 딴 건 몰라도 갈치 고등어 이름은 안다. 지금처럼 귀하신 몸이 되기 전에는 곧잘 영접했으니까.


생선 좋아하는 아빠 덕에 매일 저녁 번갈아 밥상 위에 올라왔었다. 갈치 고등어 가자미. 가끔 임연수. 서민 밥상에 올라올 정도로 싼 생선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옛날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엄마가 해준 거 먹어만 봤는데 어쩌라구..


천만다행히도, 상자를 열었을 때 원망스러운 눈동자를 마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은색 몸통만 차곡차곡 얼어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징그럽긴 했지만 불평하면 안 되지.


내장손질 같은 거 해야하는 거 아닌가? 뭘로 어떻게 씻지?


갈치국은 절대 무리니까 패스. 구워 먹고 조려 먹으면 되겠지? 근데 어떻게? 잘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먹었던 갈치가 어떻게 생겼었나 떠올려 보는 거다. 지금이야, 장기인 상상력을 발휘해 보라구. 뱃속으로 사라진 갈치들이 그 전에 어떻게 생겼었는지. 옆엔 누가 누워 있었고, 어떤 맛이었는지.


..이러한 고증과정을 거쳐, 남들은 일부러 먹으러 온다는데 정작 제주 사람들은 비싸서 사 먹지도 못하는 갈치조림에 도전해 보았던 것이었던 것이다.


진짜로 레시피 검색 안 해 봤냐고? 슬쩍 한번 보고 말았다. 내가, 운전할 때도 내비 안내대로 가는 걸 못하거든. 가기 전에 지도 찾아보고 그걸 머릿속에 다시 그리며 찾아간다. 더 편하고 빠르다.


그리하여, 상상대로 만들어낸 생애 첫 갈치조림 맛은?


신이시여, 제가 이걸 만들었습니까?


냉동실에 가득 있는 애들은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상상에맡긴다

#일상 #이야기 #제주 #제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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