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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Oct 08. 2022

친구의 취향

책장을 뒤지다 쓰다

그런 친구 있다. 짝이 다른 젓가락 같은. 성격이며 취향이 눈에 확 띄게 다른데 막상 잘 맞고 크게 보면 닮기까지 한. 친구인 게 신기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둘이 참 잘 어울린다는 말도 듣는 사이.


ㄹ이 그런 짝이다. 둘 다 책과 영화를 좋아해서 얘기가 잘 통하다가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달랐다. 같은 장르의 다른 작가를 좋아하거나 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좋아했다. 먼저 보고 싶은 영화가 엇갈렸다. 어쩌다 맘이 맞은 영화를 보고 다른 캐릭터 다른 배우에게 반했다.


어느 휴일, 용인 자취방에 ㄹ이 찾아왔다. 주변에 마트도 식당도 없다는 말을 듣고 내가 먹을 참나무통맑은소주와 자기 먹을 시원소주를 사들고. 안 팔까 봐 부산에서 사서 기차를 탔자고 했다. 보나마나 가방 무거운 거 싫다고 갈아입을 옷도 안 챙겼을 거면서 갸륵한 정성이라 하니, 그래서 페트로 사지 않았냐고 받아쳤다.


오면서 다 읽었다며 <세월>을 꺼내 던진다.

-무거우니까 놓고 간다. 보나마나 안 읽었제?

-<등대로>는 읽었거든? 니야말로 별일이다. 칙칙한 거 별로라며?

-그래 됐다. 근데 생각보다 괘얂드라.

-오 웬일로 그런 후한 평을.

-기대를 워-낙 안 하고 보이 그런갑다.

괜찮은 방법이야, 이제 죽 그렇게 읽어야겠어, 기대 없이 편견 없이, ㄹ은 책꽂이에서 대신 가져갈 책을 고르며 열심히 떠들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만드는 골뱅이 없는 골뱅이소면에 정신을 쏟느라 추임새만 넣었지만, 혼자 몇 시간이라도 떠들 수 있다는 게 내 짝의 특기였다.


기대 없이 편견 없이 골라든 책을 뒤적이다 생각이 났는지 짝이 물었다.

-ㅇㄹㄴ는 없나?

-어.(없다) 얇아서.

그건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는 의미였다. 그때 나는 두껍고 글자 많은 책만 샀었으니까. ㄹ이 한쪽 입술로 웃었다.


-그래가 내가 좋아하는 거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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