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린 Oct 12. 2022

익숙하고 싶은 마음

새차로 산책을 다녀와서 쓰다

십이년 함께한 붕붕이를 보낼 때 비슷하게 오래 신은 딸딸이, 헤지고 밑창 닳고 끊어지기 직전의 끈이 간신히 붙어있던 아이도 보내고 새 식구를 들였다.


아직 전혀 익숙하지 않다. 발은 자리를 못 잡고 신발 안을 헤매고, 붕붕이를 한 번에 찾지 못하는 눈동자도 주차장을 한참 헤맨다. 아직 걸어가고 있는데 문은 왜 자꾸 잠기는지. 모든 차의 같은 위치에 있는 브레이크를 찾는데 왜 발끝이 허둥대는지. 키를 쥔 오른손은 허방질을 꼭 두 번 하고서야 기어 위에 제대로 놓인다.


결국 익숙해질 테지만 아직은 새 친구가 좋기보단 옛날이 그리운 거다. 어딜 가는 것도 심드렁해서 동네 마실만 하다 오랜만에 좀 멀리 가봤다. 모처럼 하늘도 개었으니 가까이 걸어볼까.


두 계절만에 찾은 오름은 그새 인기가 올랐는지 주차장이 꽉 찼다. 몇 년을 다니면서 처음 보는 모습이다. 몇 번이나 사람들과 개들과 마주쳤다. 첨엔 개랑 같이 산책하러 왔나 보네, 했다가 아니 이건 ‘개모임’이라도 하는 게 틀림없어, 로 바뀌었다. 그만큼 개가 많았다, 사람만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고양이와 살지만 개도 좋아한다. 마주칠 때마다 길가에 붙은 건 피한 게 아니라 길이 좁으니 피해준 거였다. 나들이하는 식구들 모습이 보기 좋았다. 두어 번 못 참고 말을 걸기도 했다. 아이구 착해, 아구 귀여워. 개는 대답이 없고 사람만 허허 웃는다. 지 새끼 귀엽다는데 좋고말고.


몇 년 전만 해도 혼자 사진을 찍고 있으면 말을 거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대개 친절을 가장한 꼰대질이었다. 뭐 찍어요? 그걸 왜 찍어요 저걸 찍어요. 왜 그걸로 찍어요 다른 걸로 찍어요. 어디서 왔어요 거기 알아요? 담엔 거기 가서 그거 찍어요.


아줌마의 힘인지 마스크의 힘인지 이젠 그런 사람 별로 없다. 미디어의 영향인지 자본주의의 결과인지 혼자 여행하는 사람도 많고 혼자 영상 찍고 방송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잘 찍으라고 비켜 주고 기다려 준다. 적응에 느린 나는 종종 눈치없는 아줌마가 되어, 비켜 달라는 말을 듣는다.


산에서는 마주치면 인사하는 게 예의라고 배웠었다. 내려오는 사람에게 얼마나 남았냐고 물으면 금방이니 힘내라고 격려해 주곤 했었다. 안녕하세요, 힘내세요, 좋은 산행하세요, 빤한 형식은 사라지고 반려견 출입 금지, 음식물 반입 금지, 식물 채취 금지, 사진 좀 찍어 주세요(이건 그나마 낫다), 좀 비켜 주세요, 요구는 늘었다. 변화에 느린 나는 적응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익숙해지고픈 마음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나보면 알테지.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커피를 원하냐고 물으신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