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상자를 보다 쓰다
어릴 때 꼭 한 가지 갖고 싶던 장난감이 레고였다. 티비에서 제니 인형 다음으로 광고를 많이 했던 것같다. 흑기사 레고 따위 신상품 광고가 나오면 이렇게 저렇게 머릿속으로만 조물거려 보곤 했다.
여름방학 때 외사촌 집에 가면 레고상자부터 꺼내달라고 했다. 사촌들은 그닥 갖고 놀지 않는 듯 상자는 제일 윗 선반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관절이 구부러지고 머리를 말 수 있는 인형이나 로봇으로 변신하는 기차는 관심없었다. 방학이 끝나는 것보다 지은 집과 마을을 부수어 상자에 도로 넣어야 한다는 게 서글펐다.
가끔 완구점에 간다. 종이성과 레고를 구경한다. 한두 상자쯤 사 올 수도 있지만 보기만 하다 온다. 가격만 문제가 아니란 걸 안다. 사 와서 만든다 해도 놓아둘 데가 없다. 몇 시간이고 몇 날이고 블럭을 쌓고 부수어도 좋을 여유도 없다.
신나는 여름방학과 외사촌의 넓은 놀이방. 걱정없이 집을 짓고 그 속에서 뛰놀던 시간과 공간. 어느 상자 안, 선반 위에 놓여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