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트>를 보다 쓰다
<제트>라는 영화가 있다. 바실리 바실리코스의 동명 소설 원작.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1969년 영화. 프랑스에서 만들고 칸에서 극찬 받았으나 실제 배경인 그리스에서는 상영 금지됐던 영화.
그리고리스 람브라키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조국 그리스의 민주화와 평화를 위해 싸웠던 투사. 의사이자 운동선수이자 정치가였으며 국제적인 반전 모임에 참가하고 평화 시위를 주도했다. 1963년 반전 연설을 마치고 군중 앞에 선 그를 극우주의자 두 명이 공격했다. 계획된 암살이었다. 정부는 우연한 사고로 치부하며 사건을 덮으려 했으나 검사와 형사, 기자 몇 명이 진실을 밝혔다. 경찰과 군부, 극우 단체와 검은 자본까지 모두 얽혀 있었던 것이다.
람브라키스의 장례식은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민주화의 횃불이 타올랐다. 청년들은 바닥에 커다랗게 그의 이름, “Z”를 쓴다. 그는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이 끝난 불과 몇 개월 후이자 대통령 선거 직전인 1967년 4월. 군사 쿠데타와 독재 정부가 모든 일을 원점으로 돌려 놓았다. 재판 전에 이미 증언자 7명이 죽었다. 검사와 기자, 람브라키스의 동료들은 해고, 투옥 당하거나 도망자가 되었다.
사진은 이브 몽땅이다. 그가 제트를 연기했다. 가을이 되니 자주 들리는 그의 ‘고엽’을 들으며 작년 가을에 죽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를 떠올렸다. <그리스인 조르바>와 ‘기차는 8시에 떠나네’로 유명한 그가 이 영화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는 람브라키스의 지지자이기도 했다.
<남과 여>로 잘 알려진 장 루이 트린티냥이 판사를, <그리스인 조르바>의 이렌느 파파스가 제트의 아내 역을 연기했다. 이 연기로 칸 남우주연상을 받은 장 루이 트린티냥은 지난 6월 죽었다. 이렌느 파파스는 한 달 반 전인 9월 14일에 죽었다. 시대는 저물고 사람도 간다. 음악만 남았다. <제트>에서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은 서부영화 주제곡처럼 경쾌하다. 하나 마음이 함께 들썩이지 않는다. 음표가 허공에 허무하게 흩어진다.
영화의 마지막 씬. 사건을 설명하던 기자의 얼굴이 갑자기 사라지고 낯선 목소리가 담당 판사와 기자가 실종, 투옥되었음을 알린다. 나레이션이 이어진다.
“군사 정부는 장발, 미니스커트, 소포클레스, 톨스토이, 에우리피데스, 러시아식 축제, 파업, 아리스토파네스, 이오네스코, 사르트르, 올지, 핀터, 언론 자유, 사회학, 베케트, 도스토예프스키, 현대음악, 팝음악, 신수학,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그는 살아 있다”라는 뜻의 “Z”문자를 금지했다. ”
문자를 나라가 금지할 수 있을까.
그런 나라도 나라일 수 있을까.
찢어진 하늘을 한 조각 떼어 금지된 문자를 쓴다.
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