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언니 시점>을 읽다 쓰다
올해는 책을 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작년에 산 책, 그 전에 들인 책, 몇 년째 못 읽은 책과 안 읽은 책을 세워 보면 사실 일 년 갖고도 모자란다.
다짐과는 별개로 사고야 말 책도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이 나오면 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친애하는 작가님들! 출간 계획이 있거들랑 일 년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아는 사람의 책이라고 다 사거나 읽는 건 물론 아니다. 앞다투어 읽고 서평을 올려대는 책은 더 아니다. 어디까지나 좋아하는 작가만. 너무 많은 작가를 좋아한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이 책은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작년에 마지막으로 산 책 되시겠다. 친애하는 이름이 둘이나 있기에 얼른 들였다. ㅎㅅㅇ의 글과 ㅎㅅㅇ의 글들을 뒤적뒤적 읽었다. 아쉽고나 아쉬워. 어서어서 이들의 글이 페이지마다 그득그득 쌓여 더 긴 글들을 더 오래 읽게 되길 바란다.
다음으로 ㄱ, 그 다음엔 ㅇ, 한 사람 한 사람 따라가며 읽었다. ㅎㅅㅇ의 익숙한 유머, ㅎㅅㅇ의 낯선 절제, ㄱ의 단정한 어조와 ㅇ의 유려한 묘사.. 목소리는 모두 다르지만 조심스러움이 닮았다. 서랍 속의 일기를 읽는 듯도 하고 수업 중에 전달된 쪽지편지를 읽는 듯도 하다. 비밀하고 부끄러운 문장들이 꼬깃꼬깃 숨겼던 제 몸을 펼쳐 보일 때, 맨살이 드러난 건 나인 양 얼른 다시 덮곤 했다.
쓸린 살갗을 문지르듯 책표지를 쓰다듬다가 아무래도 아쉬워서. 밴드를 붙여줄까 꽃으로 덮어줄까 아니 얘가 어울리겠다. 파지 한라봉, 값은 안 쳐 주지만 시고 달고 시원하기가 최상품보다 으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