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린 Jan 04. 2023

가보지 않은 그리운 곳

영화 <윤희에게>를 보다 쓰다

마이너스 1월 1일날. TV를 켜니 <윤희에게>가 나왔다. 잘 보지도 않는 TV를, 그것도 아침부터 켜고 있는 스스로가 희한하다 했는데 얘가 날 불렀구나, 했다.


봐야지 하면서 아껴두고 있었다. 보고 싶고 틀림없이 좋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추울 땐 추워서 우울할 땐 우울해서 미뤘다. 그러던 게 미리 짜둔 것처럼 눈앞에 나타났으니 지금이 때구나 했다. 뜨거운 차를 가득 끓여 TV 앞에 앉았다.


늘 가고 싶은 설국. 가보지도 않은 곳을 그리워하는 이상한 사람 눈에 ‘달과 눈밖에 없는’ 세상은 사무치게 아름답다. 추위도 통증도 아름다울 것만 같은 고요.


그 고요를 지나 이십 년만에 마주한 두 친구는 쌍둥이라 해도 믿을 만큼 꼭 닮았다. 너의 꿈을 꿨어. 시간도 기억도 내가 바라보는 꿈 속의 나처럼 아득하다.


영화의 정보를 미리 찾아보지 않는다. 평점 아니라 줄거리도 몰랐던 영화의 스틸컷조차 본 적 있을 리 없는데. 한 장면 한 장면 다 기억에서 올라오니 무슨 일인지. 다른 집 TV에선 볼 수 없는 장면일 것같은 기분.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 하염없는 삽질과 쓸모없는 넋두리. 한데 괜한 말을 뭐하러 하냐는 물음에 대한 고모의 반격. “주문이랄까.” 별것 아닌 장면의 아무렇지 않은 말에 쓸모없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좋은 영화.

매거진의 이전글 사강을 읽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