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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Nov 26. 2022

사강을 읽은 이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다 쓰다

체계적으로 읽지 않는다. 올해의 독서 목록 같은 걸 만드는 일은 없단 얘기다. 그때그때 잡히는 책으로 한 번에 서너 권씩 돌려막기한다.


책을 숙제로 만드는 게 싫어 한꺼번에 많이 사두지 않는데도 숙제는 기어이 쌓인다. 산 지 좀 된 책은 뒤쪽 여기저기에, 최근에 산 책과 다음에 읽으려고 찾아둔 책은 눈앞에 쌓인다.


어쩌다보니 꽤 튼실한 숙제탑이 생겨났다. 두꺼운 책과 여러 권으로 나뉜 책, 두껍고 분권된 책이 잔뜩이다. 이들만으로도 가을과 겨울까지 날 수 있겠다.


한데. 두툼딱딱한 책 서너 권을 돌려 읽을 생각을 하니 지레 팔목이 시큰거리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냐면 사이사이에 얇은 책 한 권씩 끼워넣기로 했다. 어느 가을날 오후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은 이야기.


프랑수아즈 사강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로 유명한 그 작가다. 24살에 이 책을 썼다. 감각적 문장은 그렇다치고 세밀한 심리묘사가 놀랍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싶다. 나 또한 젊을 땐 그리 생각했던 건데 지금은 반대로, 그 나이라서 가능했겠구나 하는 면도 보인다. 오래된 텍스트를 읽는다는 건 자기의 나이듦을 목도하는 일이었던가.


물음표가 아니라 반드시 점 세 개로 끝나야 한다고 사강은 강조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타인을 향한 물음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자기와의 대화다. 전에는 몰랐던 것 하나, 프랑스 사람들은 브람스를 유독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브람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그것들을 ”좋아할 여유를 여전히 갖고 있는가?”


문득 사강을 읽고 책에 없는 브람스를 찾아 듣는다. 책갈피에 꽂아두었던 나뭇잎이 바스라져 떨어졌다. 거울을 보다 어제 없던 흰머리를 발견했다. 곧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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