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과 역설>을 읽다 쓰다
다시 읽고 싶은 부분에 인덱스탭을 붙인다. 책이 구겨지는 걸 싫어했던 때부터의 습관이다. 접거나 줄을 긋는 대신 잘 떨어지는 스티커를 붙여두는 것. 떼거나 옮겨 붙여도 자국이 남지 않으니까.
요즘은 줄 긋는 정도는 한다. 소리내 읽고 싶은 문장에 연필로 줄을 긋는다. 외워 새기진 못하지만 문장을 몸에 물들이고 싶을 때.
다 읽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탭을 짚어 한 번 더 읽는다. 줄친 문장을 옮겨 쓴다. 이미 물이 빠진 문장이 많다. 아니 물들인다는 생각 자체가 허튼 짓이지. 말을 붙들어 앉히려는 나는 종이체로 물에 빠진 책장을 건지려는 사람 같다.
꼭꼭 씹으며 문장을 쓴다. 필사라기보다는 메모, 아니 기억을 위한 끄적임에 가깝겠다. 학창시절 암기를 위해 공책을 빽빽이 채우던 몸짓 말이다.
읽다 보면 아까워서 애써 천천히 읽게 되는 책이 있다. 다니엘 바렌보임과 에드워드 W. 사이드의 대화집 <평행과 역설>이 그렇다. 탭을 잔뜩 붙이고 줄을 죽죽 긋고 빽빽이가 어느새 다섯, 여섯 장을 넘어간다. 책을 덮어 꽂는 게 아쉬워 들춰보고 또 들춰보며 읽고 또 읽는 거다. 필사를 한다면 통째로 하고야 말 책이다. 오래전 공부벌레들은 사전을 한 장씩 뜯어 외웠다던가. 어떤 책은 한 장 한 장 뜯어먹고 통째로 씹어먹고 싶다.
그러니까 옮겨 적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할 수 없다. 이들의 마지막 문장만 옮겨 둔다. 이걸로 충분하다.
”음악은 삶을 위한 가장 훌륭한 학교이면서 또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기도 하다.“
-다니엘 바렌보임-
”무지와 회피는 현재를 위한 적절한 안내자가 될 수 없다.“
-에드워드 사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