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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Jan 14. 2023

꽃향기를 맡으면

수선화 앞에서 쓰다

숫제 온 골목에 꽃향기를 뿌린 듯했다. 다섯 걸음쯤 걷고서야 담 위에 핀 물마농이 보였다. 코를 대 보기 전에 알았다. 향의 진원이 맞다는 걸.


물마농내가 이추룩(이렇게) 진했었나? 떠올려 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이게 수선화향이다, 라는 기억은 없다. 지금 쓰는 섬유유연제가 수선화향 아니었나? 소매를 킁킁거려 봤다. 들척지근한 게 전혀 다르다.


그러고보니 수선화 향을 부러 맡아본 적이 없다. 발목, 종아리 높이에 피는 작은 꽃에 코를 갖다 대려면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리는 정도는 되야 할 텐데 그래봤을 리가.


담 위에 꽃을 심은 부지런한 정원사에게 감사를. 사람의 얼굴 높이에 성큼 올라와 골목 그득하게 향을 채우는 꽃에게 더 큰 감사를. 훈향 글썽한 금잔옥대를 좀 더 가까이 보려 했더니 한창 식사중인 벌의 꽁무니가 움찔거리고 있다. 방해하지 말자.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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