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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Jan 02. 2023

바둑이가 있었다

고양이밥을 주다 쓰다

창가에서 밖을 구경하던 냥이들이 팔다리의 근육을 긴장하곤 한다. 작은애는 오빠 어깨 너머에서 으르릉댄다. 내다보면 낯선 눈동자와 마주친다. 다른집 냥이들이 찾아오는 거다.


한동안 까망이가 매일같이 나타나 작은애를 놀래키곤 하더니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음에는 얼룩이가, 어떤 때는 양말이가 며칠에 한 번씩 다녀가곤 했다.


매무새는 좋으니 보살핌을 받는 냥이일 듯해 먹을 걸 찾아 오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냥이 냄새를 맡고 같이 놀자고 오는 건가 싶었다.


한데 한번은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바둑이를 만났다. 마당 주변을 기웃대던 녀석이었다. 사료를 먹는 냥이는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는다. 멀리 도망도 안 가고 빤히 보고 있는 게 마음쓰여 정자 밑에 밥과 물을 조금 놓아두었다. 다음날 그릇은 비어 있었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들. 잠시 그친 틈에 나가보니 반쯤 남은 밥그릇에 눈이 쌓여있었다. 눈을 털고 조금 더 깊이 밥그릇을 넣어두었지만 며칠이 가도 냥이가 왔다 간 흔적은 없었다.


이제 오지 않으려나. 어딘가에서 추위와 눈을 피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바둑이가 궁금했다. 밥을 먹은 건 사실 다른 짐승들이었을 수도 있는데.


길냥이들에게 밥 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도 없을 때 살금살금 밥그릇을 놓고 오자면 이게 뭐하는 건가 싶다. 이제 그만할까. 마침 뒷집 개가 워우우우 짖는다. 아우 깜짝이야. 추물락했다가 약이 올라 뭐왜뭐! 홱 돌아봤다.


바둑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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