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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Feb 12. 2023

낡은 필름 같던 날들

오래된 사진을 보다 쓰다

오래된 필름 사진. 필름 카메라가 어딨나 뒤적이다 나왔다. 친구의 친구가 이젠 쓰지 않는다며 넘긴 낡은 기계는 행방불명이다.


너도 나도 가난했고 아르바이트할 시간도 없던 때. 휴학해서 번 돈으로 등록금 내고 나니 남은 건 만 원짜리 몇 장뿐이고 졸전에 낼 작품은 미완성 스케치로만 머물러 있고 완성한들 재료비도 제작비도 없고 의욕마저 실종되기 직전이었던 너와 나, 우리.


뭐라도 해보자는 발악이었는지 일단 여기서 벗어나고 보자는 도피였는지 어느 밤 우리는 동전까지 긁어모아 마로니에 공원에서 만났다. 너는 엄마의 비밀애인에게 용돈을 뜯어냈고 또 너는 동생의 저금통을 털어왔다. 절망할 이유 하나 없이도 내일을 포기하기는 쉬웠다.


인천의 ㄹ에게 카메라를 빌리고 최소한의 경비만 남기고 필름을 사고 청량리에서 기차를 탔다. 이틀이었나 사흘이었나. 얼마 가지도 못하고 끝난, 처음이었고 마지막 출사 여행이었다.


현상비가 없어 갖고만 있던 필름을 두 달 뒤 겨우 밀착만 했었다. 결국 제대로 인화 한번 못 하고 몇 개 쪼가리로만 남았다.


나란 인간, 유전자에 변화와 발전이란 없는 건지. 작고 흐려진 쪼가리만 봐도 내가 찍은 사진, 사진 속의 나를 알아볼 수 있다. 내가 보는 사물과 풍경은 이때나 지금이나 비슷하구나. 아무데나 쪼그려 앉고 퍼질러 앉고, 변함없이 나는 늘 이랬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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