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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Jan 19. 2023

위장의 반란

화장실에서 쓰다

배가 아파서 전기장판에 엎드려 지지고 있다. 어제 저녁으로 먹은 오징어가 탈이 난 모양. 화장실을 열 번쯤 오락가락했는데도 꾸룩꾸룩 진동이 멈추지 않는다.


한 마리씩 포장해둔 생물 오징어를 사 왔다. 밀가루가 없어서 부침가루로 문질러 씻는데 몸통 한 귀퉁이가 불에 덴 것처럼 누렇고 딱딱했다. 끓는 물에 데쳐서 그 부분만 잘라내고 먹었다. 한 시간쯤 후 꾸룩꾸룩이 시작됐다.


역시 그 오징어에 문제가 있었다, 기보다는 먹으면서 계속 신경쓴 탓일 게다. 오징어의 머릿살과 다릿살과 지느러밋살을 초장에 찍어 입에 넣고 씹어 삼키는 내내 집중한 건 맛이나 식감 따위가 아니었다. 고소하고 달달하다느니, 쫄깃야들탱탱하다느니 온갖 연예 프로그램에서 떨어대는 호들갑은 그들이 할 일이다. 저작중에 내 신경은 잘라낸 오징어 조각에만 가 있었던 거다. 근데 저게 뭘까? 흠 있는 걸 사 왔던 걸까? 하고.


원래 배탈이 잦다. 룸메이트가 너 진짜 성격 안 좋아, 고 할 땐 내 위장을 말한 거였다. 위장의 성격이 아주 지랄맞아서 뭘 먹건 음식에 집중하지 않으면 저도 일을 안 한다. 언짢은 일에 정신을 팔거나 음식에 이래저래 토를 달 때도 마찬가지다. 투덜대며 집어넣는다면 나도 싫어, 하며 소화하지 않고 그대로 뱉어내는 거다.


‘나‘라고 할 때 생각이나 정신만 나고, 몸은 딸린 일부라 여기고 있다가 그 일부가 이렇게 반란을 일으키면 정신이 번쩍 든다. 생각은 내가 할 테니 너는 소화나 잘 시켜, 가 아니라는 거다. 내 위장이 성격은 나쁠지언정 생각이 없지는 않구나. 주는 대로 아무거나 받아먹지 않는 일부의 ‘나’를 좀 더 예의있게 대할 일이다. 꾸루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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