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린 Mar 01. 2023

바람섬에서 살아가는 법

영등달에 쓰다

영등달이다. 꽃 피고 바람 많은 날들이다. 육지에서는 꽃샘추위라 부르는 날씨다. 섬에서는 영등할망이 오셨다고 한다.


섬 날씨야 본래 변덕화려무쌍이지만 영등달엔 특히 더하다. 한여름 태풍 같은 바람이 불다가도 한순간에 시침 뚝 떼고 봄볕을 내놓기도 하고 초여름인가 싶게 쨍쨍하다가 냅다 싸락눈을 뿌리기도 한다. 한 날 하루에 네 계절을 다 겪는 날도 많다.


바람은 섬사람들에게 해 못지않은, 때론 해보다 더 중요한 존재다. 잎을 자라게 하는 건 햇빛이지만 뿌리를 키우는 건 바람이다. 제주 당근, 무가 맛있는 건 센 바람 덕이다. 옛사람들은 바람에 배를 띄워 바다로 나갔고 태풍이 한바탕 뒤집어 청소해준 바다에서 물건을 잡아 생활을 이어갔다.


영등할망은 풍요의 신이요 바람신이다. 일만 팔천 신이 있다는 제주에서 바람신을 모시는 건 많이 봤어도 태양신은 보지 못했다. 한반도 남쪽에서 제일 높은 산이 있지만 산신을 모시는 지역도 많지 않다. 섬 사람들은 하늘을 우러르지 않는다. 갯가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향해 절을 하고 손을 모은다. 웃뜨르(중산간)에서는 당나무(신목)에 소원지를 달고 술을 올린다.


마을마다 신당이 있고 신목이 있다. 아니 있었다. 삶이 척박할수록 사람들은 의지할 데를 찾는다. 늙은 나무의 밑동에 초를 켜고 절을 하는 행위가 누군가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일지 모른다. 미신이라는 말로 무시하기는 쉽지만 좀 다르다. 믿음이나 종교라기보다 생존본능에 가깝다. 약하고 가벼운 존재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려고 힘있는 무어라도 붙들려는 몸짓인 거다.


영등신을 맞이하는 굿과 잔치 소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섬 반대쪽 갯가 집까지 바람이 싣고 온다. 제수를 준비해 굿자리에 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외딴 데서 홀로 조용히 비념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집 근처에  그런 데가 있다. 누군가, 아무도 모르게 왔다 가는 듯 어느샌가 비념이 걸려있곤 한다. 요자기 못보던 천이 걸렸다. 바로 눈치 챘지만 못 본 척 지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레도 크난 좋으큰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