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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Mar 13. 2023

목련과 주먹과 만화와 술잔

목련을 보다 쓰다

등불을 켜듯 피어난다고 모 작가가 표현한 목련이란, 요즘 더 흔해진 백목련이 아니라 진짜 ‘목련’일 것 같다. 원산지인 일본말로는 고부시. 다른 뜻으로는 주먹.


백목련보다 조금 더 큼직한 꽃송이를 드문드문 달고 있는 목련나무를 보면, 피기 전엔 확실히 모아쥔 주먹이다가 등불이 켜지듯 핀다. 밤에 보아도 그쪽만 불을 켠 듯 환하다.


이 등燈꽃이 언제부턴가 달리 보이는 건 또 또 만화 때문이다. 술병에 깃든 정령이 제 잔을 잃어 술을 못 마시게 되었다고 엉엉 우는 만화가 있었다. 영과 대화할 수 있는 우리의 주인공은 목련 꽃잎에 술을 따라 준다. 꽃술 한 잔 달게 마시고 원이 풀린 고주씨는 무사히 술병으로 돌아가고 해피엔딩.  


목련이 아니라 그냥 연이었을 수도 있고 모란이나 다른 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이야기가 너무 좋았던 나는 이후로 목련이 죄 술잔으로 보인다. 저 꽃잎에 술을 담아 마시면 얼마나 달까, 입맛을 다시고 마는 거다. 아아 꽃멀미, 마시기도 전에 취해 버리는.

봄 밤. 술병의 정령을 불러다 마주 한 잔 하고 싶은 날들인데 만화책 상자가 너무 깊이 파묻혀 있구나. 아쉬워서 다른 만화라도 집어다 앉혀 봤는데.. 쿠사나기 소령(공각기동대)은 좀 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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