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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Jul 21. 2022

지레도 크난 좋으큰게

마실 중에 쓰다

나이 먹은 후의 얼굴은 자기 책임이라는 말이 그렇게 멋있었다. 생의 비밀이랄까 철학이 담긴 잠언이라 생각했다.


눈가주름 많은 얼굴이 좋았다.  주름들이  웃어서만 생긴  아닐  있는데도. 주름길을 따라 흐르는 웃음을 보고 나면 혼자 거울을 보기도 했다.  얼굴에도 웃음길이 있을까 궁금했지만 찾은 적은 없다.


여고를 나왔다. 입시시험이 끝나고 졸업도 방학도 하지 않은 몇 주 동안은 수업도 안 하고 할 일이 없다. 어느 성형외과가 좋다더라, 어디가 싸다더라, 쌍커풀 수술과 운전 면허 같은 얘기만 하다 돌아갔다. 가끔 취업 관련 특강 같은 걸 했지만 대부분 형식적인 시간 때우기였다.


아이들이 듣는 척이라도 한 건 미용 수업 뿐이었다. 옷 잘 입는 법이나 화장 기술을 알려 줬는데 구석에서 책만 읽던 내 귀에는 한 마디도 안 들어왔다. 내가 여태 화장을 못 하는 건 스튜어디스 출신이라는 뷰티 강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서일까?


이십 대 삼십 대에는 집 앞 가게에 갈 때도 화장을 하고 신경 써 옷을 입는 이들이 많다. 그 속에서 선크림만 겨우 바른 생머리의 나는 게으른 인간으로 보였을 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서 게으른 아가씨는 그대로 게으른 아줌마가 되었다.


지겹게 듣던 염색 좀 해라, 파마도 좀 해봐라, 잔소리를 나이 먹으면 안 들을 줄 알았더니 웬걸, 흰머리를 생각 못 했다. 희끗희끗 가닥이 많아질수록 압박이 커진다. 조만간 첫 염색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자기 관리 운운 하는 귀딱지가 거슬린다.


커피숍의 알바 구함 전단지에 ‘용모 단정’ 문구가 들어 있는 곳은 가지 않았다. 단정한 옷을 입으라는 의미가 아니란 건 면접 두세 번만에 바로 알았다. ‘키는 크네요’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 그래. 당신보다 큰 거 같네요. 그래서 뭐? 속으로만.


“어디서 완?”

“공천포마씸”

“그디서 무사 완?”

“마실헴수다”

“기구나이”


마실하다 만난 옆 동네 삼춘들과 길바닥에 쪼그려 앉아 잠시 시시덕거렸다. 슬슬 가려고 인사하며 일어서니 삼춘들,


“하영도 허연게”

지레도 크난 좋으큰게


 참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같은 말인데 무사 이추룩 지꺼지멘. 진짜 좋은 것도 같다. 키’는’ 크니까.


*


“하영도 허연게” > 진짜 하얗네

지레도 크난 좋으큰게” > 키도 커서 좋겠네

 무사 이추룩 지꺼지멘 > 왜 이렇게 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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