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중에 쓰다
나이 먹은 후의 얼굴은 자기 책임이라는 말이 그렇게 멋있었다. 생의 비밀이랄까 철학이 담긴 잠언이라 생각했다.
눈가주름 많은 얼굴이 좋았다. 그 주름들이 꼭 웃어서만 생긴 게 아닐 수 있는데도. 주름길을 따라 흐르는 웃음을 보고 나면 혼자 거울을 보기도 했다. 내 얼굴에도 웃음길이 있을까 궁금했지만 찾은 적은 없다.
여고를 나왔다. 입시시험이 끝나고 졸업도 방학도 하지 않은 몇 주 동안은 수업도 안 하고 할 일이 없다. 어느 성형외과가 좋다더라, 어디가 싸다더라, 쌍커풀 수술과 운전 면허 같은 얘기만 하다 돌아갔다. 가끔 취업 관련 특강 같은 걸 했지만 대부분 형식적인 시간 때우기였다.
아이들이 듣는 척이라도 한 건 미용 수업 뿐이었다. 옷 잘 입는 법이나 화장 기술을 알려 줬는데 구석에서 책만 읽던 내 귀에는 한 마디도 안 들어왔다. 내가 여태 화장을 못 하는 건 스튜어디스 출신이라는 뷰티 강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서일까?
이십 대 삼십 대에는 집 앞 가게에 갈 때도 화장을 하고 신경 써 옷을 입는 이들이 많다. 그 속에서 선크림만 겨우 바른 생머리의 나는 게으른 인간으로 보였을 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서 게으른 아가씨는 그대로 게으른 아줌마가 되었다.
지겹게 듣던 염색 좀 해라, 파마도 좀 해봐라, 잔소리를 나이 먹으면 안 들을 줄 알았더니 웬걸, 흰머리를 생각 못 했다. 희끗희끗 가닥이 많아질수록 압박이 커진다. 조만간 첫 염색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자기 관리 운운 하는 귀딱지가 거슬린다.
커피숍의 알바 구함 전단지에 ‘용모 단정’ 문구가 들어 있는 곳은 가지 않았다. 단정한 옷을 입으라는 의미가 아니란 건 면접 두세 번만에 바로 알았다. ‘키는 크네요’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 그래. 당신보다 큰 거 같네요. 그래서 뭐? 속으로만.
“어디서 완?”
“공천포마씸”
“그디서 무사 완?”
“마실헴수다”
“기구나이”
마실하다 만난 옆 동네 삼춘들과 길바닥에 쪼그려 앉아 잠시 시시덕거렸다. 슬슬 가려고 인사하며 일어서니 삼춘들,
“하영도 허연게”
“지레도 크난 좋으큰게”
못 참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같은 말인데 무사 이추룩 지꺼지멘. 진짜 좋은 것도 같다. 키’는’ 크니까.
*
“하영도 허연게” > 진짜 하얗네
“지레도 크난 좋으큰게” > 키도 커서 좋겠네
무사 이추룩 지꺼지멘 > 왜 이렇게 신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