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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Mar 02. 2023

음악을 들려줘요

콘서트 표를 사다 쓰다

어제는 비가 꽤 왔는데 하루 일찍 오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전날 아침, 말로만 들어왔던 티케팅 러시를 온몸으로 겪고 있었으니까.


판매 한 시간 전인 8시까지만 가도 여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는 바보였다. 기다리며 읽을 책을 주섬주섬 챙겨 일곱 시에 나서는데 전화가 왔다.


-방금 라디오에, 거기서 줄 서고 있다는 사람이 나왔는데, 6시 반에 왔는데 앞에 14명 있댄다.

-무시거??!!!!!(왓??!!!!)


날아갔다. 아니 마음은 날아갔는데 웬 차가 이리 많은지. 칼치기 기술을 보유한 인간들이 잠깐 부럽기도 했다. 과속 단속 카메라는 일 킬로가 멀다하고 나타나 50 넘지 말라고, 30 아래로 낮추라고 눈을 부라렸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설마 허탕이야 치겠어.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았는데. 다독이는 마음이 무색하게 발가락 끝에 자꾸만 힘이 실렸다.


접는 의자를 야무지게 챙겨온 사람들의 줄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이런 거구나. 광클 러시에서 살아날 자신이 없었고 공연장이 마침 집에서 가까우니 한번 가볼까, 가벼운 생각이었다. 실례였다. 두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계신 이 분들에겐 가벼운 일이 아니었던 거다.


동세벡(꼭두새벽)에 나섰을 이들에 비하면 밥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슬렁슬렁 나온 나는 애썼다 할 것도 없다. 바로 앞에서 매진이 된다 해도 억울해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실은 혹시나 할지 모를 실망을 막기 위한 꼼수였지만.


그리하여, 어찌어찌, 표 사는 데는 성공. 잠깐씩 앉긴 했지만 두 시간을 서서 기다렸더니 허리와 고관절이 몹시 땡겨 그날밤은 제대로 설쳤지만 괜찮다. 이제 공연일을 즐겁게 기다리면 된다.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 <kiss the rain>(콘서트의 주인공인 이루마의 곡)이 나왔다. 깜짝이야. 아무래도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다. 그래도 뭐, 알아서 음악을 들려주는 이런 감시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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