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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Mar 16. 2023

숙제. 혹은 꿈의 무쓸모

악몽을 꾸고 난 아침에 쓰다

1.

새해라서, 새 만남이 있다는 새소식을 들어서 축하의 선물로 준비했었다. 그림엽서를 갖고 있던 종이액자에 넣으니 크기가 꼭 맞았다. 흐뭇하게 사진을 찍은 게 벌써 몇 달 전인가. 어제야 주인을 찾아갔다. 이러다 목련 꽃잎 한 장 남지 않겠다고, 허둥지둥 한참 늦은 숙제를 했다.


2.

남자들은 군대 다시 가는 꿈을 많이 꾼다데? 다행히도 군대를 안 다녀왔고 재입대의 악몽도 꾸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는 오래 다녔고 다시 학생이 된 악몽은 끔찍하게 많이 꾼다, 불행히도.


학교가 괜찮았다면야 악몽이 되지도 않았을 테고 지금껏 시달릴 일도 없을 텐데. 불행히도 좋은 기억이 별로 없고 날이 갈수록 끔찍했고 벗어나는 날만 간절히 기다렸었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졸업장을 받자마자 사진 한 장 안 찍고(카메라도 없었지만) 달려나왔으니 뭐. 간신히 도망쳤던 곳에 감쪽같이 돌아와 있으니 자면서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밖에.


학교에서 눈을 뜨는(?) 순간 불안하다. 늘 준비물을 못 챙겼거나 숙제를 잊었다. 갑자기 벼락시험을 친다 하고 물건을 훔쳤다고 의심 받는다. 선생은 이런 구실 저런 구실을 들어 혼을 내고 교실 중간에 혼자 일어선 나는 억울하다 말 한 마디 못 하고 따갑고 서늘한 눈총을 받는다. 복사물을 교실에 가져가야 하는데 벗어둔 신발이 없고, 복도는 다른 방향으로 꺾여 있고, 교실의 팻말이 바뀌어 있고, 예비종이 치는데 아무리 뛰어도 계단은 끝나지 않고, 기어이 시작종이 울리고, 곧이어 마지막종도 울리고, 다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은데 차비와 겉옷은 교실에 있고, 사라진 교실은 나타날 줄을 모르고, 어느샌가 들고 있던 복사물도 사라져 있고, 신발도 아직 찾지 못해 맨발이거나 짝짝이 바람이다.  


한데 어제 꿈에선, 웬일이니! 학교에서 눈을 뜬 건 여느 때와 같았지만 나는 선생이었다. 학생이 아니라! 준비물과 숙제를 잊었다고 혼나지 않아도 되고 시험도 안 쳐도 되고 억울한 오해를 받을 일도 없고 심부름을 할 일이 없으니 심부름하던 물건을 잃어버릴 일도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수학여행 날이었다. 내가 할 일은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운동장으로 내려가라고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뿐이었다. 예비종 소리를 처음으로 불안기 없이 들으며 우리 반인 18반(18반이라니, 여기서 알아챘어야 했다.) 교실로 향했다. 교실이 18층에 있어 엘리베이터를 탔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땡! 도착음이 울리자 내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반을 잃어버렸다. 교실과 학생들 통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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