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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Mar 24. 2023

좌충우돌 없으면 내가 아니지

어제의 좌충우돌

벌써 고사리장마라는 건 아니겠지, 잠깐 생각했다. 매일 비가 온다. 오늘 아침도 부옇고 흐릿하고 축축하고 눅눅하다.


어제도 종일 흐렸다. 칙칙하니 마실가지 말까 하다가 집에만 있는 게 더 칙칙한 거 같아서 늦은 오후에 나섰다.


집 근처 마실할 땐 대개 동쪽으로 걷는다. 옆동네 포구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딱 한 시간이다. 물론 한눈팔이하느라 기본 쩜오 배는 더 걸린다.


코스의 사분의 일 정도 갔을 때 전조도 없이 해가 났다. 반짝이 아니라 쨍쨍이다. 아아 선크림 안 발랐는데. 잠깐 멈췄다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한 시간 넘게 햇빛을 받아야 하는데, 그 정도 시간이면 내 맨살은 화상을 입는다.


선크림을 바르고 아까 안 챙겼던 카메라도 들었다. 빛 좋을 때 찍으려고 보아둔 곳이 있었다. 저녁빛은 더 좋겠지. 카메라를 들어 더 느려진 걸음으로 아까 돌아섰던 곳을 지났다. 순간, 뭐지? 위화감이 스쳤는데 이땐 뭔지 몰랐고,


사분의 이 정도를 갔을 때 알았다. 사라졌던 먹구름이 어느새 돌아와 있는 걸. 일가친척 다 데려왔는지 기세가 등등하다. 사분의 삼 지점에 있는 ‘그집앞’까지만 후딱 갔다 오려고 서두르는데, 우리 냥이가 택배맨  왔을 때 내는 (으르르르) 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비 맞아서 옷 젖는 거야 괜찮은데 카메라 덮을 수건 한 장 없으니 고민스럽다. 결국 두 번째 회보(?)를 했다.


자, 맨 처음 나설 때로부터 이미 한 시간이 지났다. 걸은 거리도 평소와 비슷하다. 한데 이대로 마치기엔 다 못 한 재채기 같고 그렇다. 카메라 셔터 한번이라도 제대로 눌러 봐야지. 꼴값하며 생활방수 점퍼를 입었다. 수건을 덮은 카메라를 목에 걸고 옷자락으로 덮었다. 목 있는 워킹화로 바꿔 신고 비장하게 나섰다. 한국인은 삼세 번이지.


마침내 그집앞에 도착했다. 염두했던 저녁빛은 없지만 뭐 어때.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지. 카메라를 잡는데 위화감이 든다. 뭐지?


점퍼 갈아 입으면서 다른 카메라를 든 모양이다. 그건 상관없는데 이 카메라, 배터리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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