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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Apr 18. 2023

이름은 서너 개 별명도 여러 개

돈나무꽃 앞에서 쓰다

집을 나서며 숨을 크게 마신다. 계절과 날씨를 냄새로 알 수 있다. 안개 냄새에 먼지 냄새가 섞여 있어 마스크를 쓰지만 큰길을 벗어나면 냉큼 벗는다. 먼지 냄새를 뚫고 솟는 풀 냄새를 찾아 킁킁거린다.


금세 찾았다. 돈나무꽃 냄새다! 몇 걸음 만에 꽃피우기 시작한 나무를 발견하고 헤벌쭉 웃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건 모든 감각에서 그렇다.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을 단번에 알아듣는 건 그 목소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라니를 모르는 사람은 울음소리를 들개의 것과 구분하지 못 한다. 홍시를 먹어본 적이 없다면 달고 짜고 맵고 시고 쓴 맛 중에서 어떻게 홍시맛을 골라내겠나.


모르던 나무의 이름을 알고 나면 그때부턴 그 나무만 보인다. 편백나무에 한 번 빠지면 그 냄새를 잊을 수가 없어 자꾸 찾게 되고, 숲에 들어서는 순간 나무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공기에 섞여 있는 냄새로 가늠해내는 거다. 돈나무의 이름을 기억한 후로 멀리서도 꽃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식물의 이름과 냄새를 알아갈수록 서울촌년은 제주촌년이 되어간다.


돈나무꽃 향은 색으로 표현한다면 진한 노랑이다. 내가 그렇다는 말이고 당신한테는 다를 수 있으니 직접 확인하시고. 암튼 향이 아주 진해서 만리향이라고도 하고 동네마다 음나무, 해동 등 부르는 이름이 많다.


이름이 돈나무가 된 까닭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똥나무에서 바뀌었다는 거다. 돈나무에는 개똥나무, 똥나무라는 별명도 있다. 열매가 맺힐 때쯤 개똥 같은 냄새가 나기 때문이란다. 곤충이 많이 꼬이는 데서 온 이름이라는 얘기도 있다.


꽃향기가 하도 좋아 만리향으로 불리던 나무가 그 꽃 떨구고 열매를 맺으면 똥나무가 되는 거다. 일년살이가 꽤나 다이나믹하다. 아니 이거야말로 ‘만고’ 내 생각이다. 다이나믹이고 변덕이고는 인간의 마음이 그런 거다.


어떤 건 좋은 향기고 어떤 건 고약한 냄새, 라고 하는 게 결국 아는 냄새에 끼워 맞추려는 편협에서 생긴 오해일 수 있겠다. 어떤 동물에겐 열매 냄새가 몹시 향긋한 황금나무일 수도 있지 않겠냐고, 어디 쓸 데도 없는 혼잣생각을 한참 했다. 그래도 진노랑 향기 몸에 담뿍 입혔으니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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