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량의 글을 읽다 쓰다
예쁜 책 옆에 예쁜 책. 요전에 참 좋다고 고백했던 녹색광선의 김사량 소설집과 그의 글이 한 편 실린 시와서 산문선이다. 읽은 지 한참 됐는데 지금 새삼 꺼낸 이유는?
-어제 나쓰메 소세키의 <태풍>을 읽었고
-그전엔 <춘분 지나고까지>을 읽었고
-또 전날엔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읽었고
-<사양>을 읽기 전엔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을 읽었고
-읽다 보니 <쓰가루>가 읽고 싶어졌는데 못 찾아서 <사양>을 대신 읽은 거였고
-그러니까 나쓰메 소세키와 다자이 오사무를 읽었는데 이 둘의 글이 다 실린 책이 <꽃을 묻다>인데 마침 떠오르는 글이 있어서 확인해 보려고 꺼내다가 옆에 있던 <빛 속으로>까지 꺼내서는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 그거 뭐였더라, 하면서 뒤적뒤적
…그러하다.
아무튼 꺼냈으니 쬐금 얘기해 보자.
김사량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번역하신 김석희 선생님의 해설을 읽고, 또 이분의 유튜브 채널 ‘문학 팔레트’를 찾아 보면 된다. 가끔 서문이나 해설 등의 덧글이 본문만큼 좋은 경우가 있는데 <빛 속으로>가 딱 그렇다.
책에 대해서 내가 할 말은 별로 없단 소리다. 암튼 재미있게 읽었다는 정도? 뚜벅뚜벅 읽다가 다다다다 읽으면서 내 얘기를 슬쩍 비벼넣었다.
한국인 김사량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일본말로 쓴 글들이다. 모국어가 아닌 말로 글을 쓴다는 건, 이유와 상황과 의미와 뭐 그런 것들 다 치우고 보면, 나오는 말은 딱 하나다. 힘들었겠네.
말도 아닌 글을, 그것도 적국의 언어로 쓰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 텐가. 그 힘듦이 이야기와 묘사라는 구체적 형상을 하고 글 여기저기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의 우왕좌왕한 고군분투가 쓸쓸하면서도 우습다. 김사량은 해학을 아는 사람이었던 거다.
일본말로 쓰였으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 글들은 꼭 일본 소설 같은 맛이 난다. 그러면서 한국 소설 같다. 각 나라, 혹은 언어의 글에는 딱 꼬집어내긴 어렵지만 분명 존재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서정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본과 한국의 서정이 버물린 맛, 김사량의 또다른 매력이다.
그의 말 몇 마디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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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도쿄에서 여유 없고 답답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나는 고향에 돌아가면 딴사람처럼 변해 어처구니없을 만큼 농담을 많이 한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선배들한테도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실없는 농담을 건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가면 집에서도 매일같이 농담이나 웃긴 이야기를 하면서 지낸다.
...가끔 이 땅에서 어쩔 수 없이 불쑥 향수에 빠질 때면, 대개는 간다에 있는 조선 식당에라도 가서 활기찬 학생들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조선 가요나 야담, 춤 모임을 찾기도 한다. -거기서 이주 동포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 가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날 때도 있고,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쁠 때도 있다. 조선말로 장난치는 우스갯소리를 듣는 게 너무 좋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것은 왠지 일종의 센티멘털리즘이라고 부를 만한 건지도 모르겠다.
—김사량 <고향을 그리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