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린 Mar 31. 2023

시를 써 주세요

이산하 <양철북>을 읽다 쓰다

이산하 시인은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었다. 석방된 후 10년 동안 절필했다. 그후 연필을 다시 깎기 시작한 시인이 나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하마터면 이 책들을 보지 못할 뻔하지 않았나. 시, 산문, 소설 모두 좋다. 대단하다. 잘 쓰는 사람은 뭘 써도 잘 쓴다지만, 모든 작가가 모든 형식의 글을 고른 수준으로 써내지는 못한다. 이분만큼은 말이다.


모든 글이 다 시인 자신이라서 그런가 보다. 이산하 시인은 연필이다. 제 몸을 깎아 글을 쓴다. 그래서 모든 글이 사무치고 아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피가 뚝뚝 떨어진다. 글에는 피는커녕 몸뚱이도 없는데 어디 숨어있다 나오는 피고 눈물인지 모르겠다. 가슴이 터질까 봐 시인의 글을 한 번에 많이 읽지 못한다. 한 권 읽고 쉬고, 시 두 편 읽고 쉬고 한다. 안 그러면 심장이 남아나질 않을 테다.


이 책은 자전소설이다. 슬프지 않다. 양철북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소년 이산하는 유쾌하고 씩씩하다. 소년은 ‘북을 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시인이 되었다.  


<한라산>을 쓰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썼다. 시인이었기에 끝내 연필을 깎았다. 더 뾰족하게 깎았다. 그리고 잡혔다. 내내 유쾌하게 읽은 책을 덮을 땐 역시나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늘 같은 실수를 한다. 피흘리는 장면에 약한 주제에 왜 다시 피흘리는 책을 들었나 후회했다. 하지만 몇 날이면 또 잊고 다른 시집을 들 테지.


쇠잔한 몸으로 섬에 머물고 있는 시인이 부디 건강을 회복하면 좋겠다. 절필의 10년 동안 쓰지 않았으니만큼 앞으로 10년, 그후에 또 10년, 그렇게 계속 써 주시길 바란다.


“무릇 시인은 시를 쓸 때마다 언제나 최후의 한 사람이므로

항상 백척간두에서 한발 내딛는 마음으로 쓰게 될 것도 믿는다.“

-법운스님의 편지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버물린 말의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