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란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을 읽다 쓰다
서른 넘은 나이에 직장도 없이, 비전도 없이, 무엇보다도 여친도 없이, 좁은 고시텔 방에는 빌어먹을 창문도 없이, 그리고 결정적으로 돈도 없이. 없는 걸 대라면 밤새 계속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순간 그 말이 왜 떠올랐을까. 나만 없어, 고양이. 고양이가 있다는 말은 키울 만한 능력, 환경, 성격을 다 갖춘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얘만 데리고 있으면 그 결핍의 목록 때문에 주눅드는 일은 더 이상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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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럴 줄 알았지. 시인이 대신 곡하는 사람(이산하 <양철북>에서)이라면 소설가는 대신 떠들어주는 사람이니까. 투덜대고, 징징대고, 욕하고, 악을 쓰는 인물들은 내가 하고 싶었던 바로 그 이야기를 한다. 나는 비밀을 털어놓는 위험도 없이 잠깐이지만 후련해진다.
작가의 전작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에서도 그랬다. 아홉 소설의 화자는 끊임없이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남편이 없고, 상대해 주는 이웃이 없고, 엄마가 있지만 없고, 열 달 품었다 낳은 아이가 없고, 결혼사진이 없고, 돈이 없고, 일자리가 없고, 메시지에 대답하는 친구가 없고, 집이 없고, 강아지와 고양이가 없고, 브래지어와 팬티가 없고, 시간도 없고, 없는 것들에 밀려 ‘나’마저 사라지기 직전이다.”
팬티(없는 것)를 찾아 고군분투하는 화자와 함께 웃고 울었듯 이번에도 쉽게 민용이, 연후가, 저커와 이안이 될 수 있었다. 이들은 나 대신 절망하고, 욕하고, 술 마시며 한탄하고, 울고 웃었다. 나는 함께 술잔을 부딪치며 이들이 털어놓는 걱정거리에 귀 기울이는 척하다가 슬쩍 내 얘기를 끼워 넣는다. 오십이 코앞인 나이에 직장도 없이, 비전도 없이, 무엇보다도 자식도 없이, 좁은 셋집에는 빌어먹을 우영팟(텃밭)도 없이, 그리고 결정적으로 돈도 없이. 없는 걸 대라면 밤새 계속할 수도 있다고. ‘간단하다‘.
맞다. 고양이는 있다. 하지만 내가 키울 만한 능력, 환경, 성격을 다 갖춘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집사가 되었다. 얘만 데리고 있으면 그 결핍의 목록 때문에 주눅드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자기위안을 했던 것도 같다. ‘마당 있는 집에 강아지와 고양이’는 내 오랜 꿈이기 때문이다. 여태 내 집도 마당도 갖지 못하고 떠도는 생활, 꿈만 꾸는 밤들이 지긋지긋했던 어느 날 대책 없이 고양이를 받아 왔다. 나만 없는 목록에서 고양이 하나 빠졌을 뿐이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말 하나가 생겨서 위안이었다. 없음이 생기다니, 뭐(위안)가 되기까지 하다니. 말인가 고양인가. 이런 말장난마저 좋았다.
‘집사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곧 철거할 아파트에 들어가다니? 살림살이 하나 없이? 돈도 빽도 없으면서 강남을? 집도 벌이도 없는 처지에 고양이? 없는 것들의 목록이 다른 것들을 갖지 못하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되는 사회가, 쏟아지는 부정의 말들이 지긋지긋했을 테다. 빡쳤으니 뻗댄다. 이거 왜 이래? 없는 것만 있는 줄 알아? 있는 것도 있거든? 악으로, 깡으로, 무모함으로, 혈기와 배짱으로 소리친다. 세상이 엿 같다고, 사는 게 똥 같다고,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볼 거라고. 아아 후련해.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이들의 내일을 응원한다. 세상 모든 극한직업 집사들과 ‘나만 없어, 고양이’인 당신들도. 힘내시라. 없는 것 투성이지만, 우리에겐 용기 없음을 뺀 나머지의 용기와 부족한 부분을 덜어내고 남은 자신감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