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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Jun 24. 2023

장래희망

강의를 끝내고 쓰다

수업 하나가 끝났다. 올해 딱 두 개 잡힌 수업을 급하게 하게 되어 매주, 지난 주는 매일 산을 아침저녁으로 넘어다녔다. 다음주면 하나 남은 수업도 끝나고, 반백수가 온전한 백수가 된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은 백수가 가끔 입는 정장 같은 거다. 내겐 그렇다.


학교나 도서관 프로그램의 경우, 외부 강사의 시급은 기본 43000원 정도다. 주최측이나 행사내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40000원에서 50000원 사이다. 강사의 급에 따라서 다른 경우도 있다. 나같이 경력이 미미한 사람은 급으로 나눌 때 3,4 정도의 가장 낮은 저급 강사로 분류된다. 억울하진 않다. 특급이나 1급 강사라면 시간당 수십만 원의 강사료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게 가능한 건 장관이나 몇십 년 경력의 교수뿐이니까. 강사카드에 적어넣을 변변한 학력과 경력이 없는 나로선 한두 번 주어지는 기회도 감사할 따름이다.


어떤 이는 시급 40000원이면 괜찮지 않냐고 한다. 최저시급의 네 배나 되지 않느냐고. 매번 다르긴 하지만, 내가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은 최소 세 배 정도다.  한 시간 강의를 위해서 세 시간쯤은 필요한 거다. 거기에 왕복 시간도 있으니 한 시간 수업하는데 여섯 시간이 든다. 계획할 때 두 시간 강의로 짜거나 운이 좋아 두세 번 연강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한 곳에서 두 시간을 넘기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외부 강사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강의는 이렇다. “매주 ㅇ요일 ㅇ시, 두 시간 강의 4회”.


이렇게 320000원(세전)의 강의료를 번다. 한 달에 일곱 개쯤, 그러니까 매일매일 강의를 해야 최저생활비를 벌 수 있다. 그렇게라도 할 수만 있다면 좋다. 하지만 수업 ‘따는’ 것도 쉽지 않다. 학력 경력이 없는데다 활용할 학연 지연도 없고 영업소질마저 없으니 불러주는 데도 거의 없다.


어떤 이는 그래도 프리랜서 아니냐고, 매인 데 없이 ‘자유’로우려고 스스로 선택한 길 아니냐고 한다. 하나씩 하다 보면 경력도 쌓이고 아는 데도 생겨서 일도 수입도 늘지 않겠냐고. 다들 그렇게 시작하는 거 아니냐고.


어떤 이는 교육과 상담을 돈으로 환산하는 건 천박하다고 한다. 강의는 돈이 아닌 사명감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어떤 이는 그런 강의, 시급 낮은 강의는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최저시급에 못 미치고 그야말로 기름값도 안 나오는(유류비는 언감생심이다.) 강의도 냉큼 달려가 하는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강사료가 오르지 않는 거라고.


모르겠다. 지난 봄, 일이 없어 일을 구했다. 들어오지도 않는 강의니 청탁이니를 그만큼 기다렸으면 되었다고, 당장 먹고 살 일을 구했다. 이력서를 쓰다 한참 웃었다. ’글을 쓴다‘고 쓸 난이 없었다. 책은 경력이 못 되고 글은 직업이 아니었다. 장래희망 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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