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린 Jul 02. 2023

엄마의 미싱

옛날 재봉틀을 생각하며 쓰다

동세벡(꼭두새벽)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전화 잘 안 받는 딸과 어차피 잘 안 받는다고 맘놓고 아무때나 전화하는 엄마. 쓰고 보니 참 안 닮은 모녀가 좀 닮은 듯도 하다. 암튼 그런 줄은 알지만 혹시나 하고, 어디가 아픈가 무슨 일이 있나 하며 냉큼 받았다. 아니다, 실은 비몽사몽 얼떨결에 받았다.


모- 니 전에 미싱 얘기했제?


나- 어어? 어. 근데 왜..(이 새벽에? 다섯 시에?)


모- 아래(요전에) 진시장에 천 끊으러 갔는데 거서 오래 장사한 땡땡네라고 있거든? 내랑 친해. ..(중략).. 그래서 니가 전에 언제 미싱 얘기했던 거 생각나 가, 얻어가, 갖다 놨으이 언제 올 때 가가레이. 근데 이기 엄청 무겁데이. 그리고 다리는 없다.


나- ….무겁고 다리가 없다고?


모- 어. 다리는 필요 없다 아이가. 요즘 바쁘나? 언제 올 거로?


나- 어어…..


엄마는 미싱일을 오래 했고 미수의 나이인 지금도 한다. 물론 옛날에 쓰던 수동구동 재봉틀은 아니고 전동을 쓴다. 옛날 건 발판을 앞뒤로 눌러 돌리는 방식이었고 다리와 발판은 쇠로 되어 있었다. 다리부분만 살려 빈티지 탁자로 애용되는, 하여 요즘 꽤나 고가에 거래된다는 그거 말이다.


몇 해 전 어느 카페에선가 그런 탁자를 보고 엄마가 쓰던 미싱은 어떻게 됐나 몇 십년만에 궁금해졌다. 다니러 갔을 때 물어보니 벌써로 남 줐지, 한다. 무릎이 아파 더 쓸 수 없어서 구두방 아저씨한테 줬단다.


모- 그그 때문에 이 무릎이 다 나갔다 아이가. 근데 니는 미싱은 와?


나- 아니 그냥~ 혹시 안 쓰면 내가 가져갈까 했지. 요즘 그거 없어서 못 구한다던데?


우리 자매는 엄마가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미싱을 책상으로 쓰곤 했다. 한 명은 미싱에서, 한 명은 밥상에서 숙제를 했는데 대개 내가 밥상을 썼다. 언니가 미싱을 선호했으므로.


그런 옛날 얘기들을 한참 했었는데, 이것저것 다 까먹고 딸이 미싱을 찾더라는 기억만 남겨둔 엄마가 하나 구했노라고 보고전화를 한 거다. 새벽 다섯 시에.


내가 찾은 건 책상으로 쓸 다리 쪽이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언제 (차 실어)배 타고 미싱 가지러 가겠다고 했다. 가져온다고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별 것 아닌 별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