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를 입다 쓰다
미싱일이 직업인 엄마였으니 딸들 옷 한 벌씩은 지어 입혔다. 시간이나 옷감에 여유가 있을 때는 어어어어쩌다 한 번뿐이었지만 공들여 지은 원피스 한 벌쯤은 늘 있었다. 언니와 세트인 꽃무늬 원피스를 입는 게 늘 즐거운 건 아니었지만. 어릴 땐 별 게 다 창피한 법이다.
딸들은 제가 번 돈으로 옷을 사 입은 지 오래다. 침침한 눈으로 미싱에 앉을 필요없지만 엄마는 가끔 옷을 짓는다. 딱 남방 한 벌 만들만큼 천이 남았다거나 좋은 자켓 기지(원단)가 생겼다거나 매번 비슷한 핑계를 댄다.
큰딸 셋째딸은 왜 만들었냐고 승질만 낸다며, 요즘은 가봉(시침질)도 못하는 둘째딸 옷만 만드는 모양인데…나라고 맘이 편하기만 한 건 아니다. 무릎도 안 좋은데 관두라는 말을 삼키며 간단한 치마 같은 거나 만들어 달라고 한다.
노인네의 건강도 염려스럽지만 다른 이유가 있는데, 엄마와 딸의 취향이 너무 다르다는 거다. 엄마는 팔십이 가까운 지금까지 한결같이 소공녀 스타일을 선호한다. 주종 컬러는 크림색과 베이비핑크와 소라(하늘)색. 민무늬 검정옷을 좋아하는 내게 엄마가 꾸준히 들이미는 셔링과 프릴과 리본은 재앙일 때가 많았다.
요즘엔 그래도 중년에 접어든 딸의 취향을 제법 들어준다. 애리(칼라)는 어떤 모양으로 할지, 기장(길이)은 어찌할지 물어보고 최대한 반영해 준다.
최근에 지어 보낸 셔츠가 꽤 맘에 든다. 자주 손이 가 한 벌 더 만들어 달라 했더니 반색을 한다. 무슨 색이 좋을까 단추는 뭘로 할까 신이 나셨다. 최근이라지만 몇 년 되었으니 기억이 안 날까 싶어 아침에 입기 전에 찍어 보냈더니 엄마의 답장.
“옷 샀나!(느낌표지만 의문문)”
내 엄마 맞구나. 나만 하도 안 닮아서 아닌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