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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Apr 17. 2024

아른대는 그림

박완서 <나목>을 읽다 쓰다

소설의 한 장면이 자꾸만 떠오를 때가 있다. 처음 가본 동네에서, 낯선 집 처마에서, 전시회에서 그림을 보다가, 빈 우편함을 열어보다가. 한 순간 떠오른 장면이 사라지지 않고 거푸, 갈수록 자주 아른댄다면 기어이 책을 찾아 읽어야 하는 거다. 다만 내가 봐야 할 게 박수근의 그림인지 박완서의 책인지가 확실치 않았는데, 그림을 보러 강원도까지 갈 일이 아득해 <나목>을 몇 십년만에 읽었다.


그 장면은 없었다. 어느 페이지에서 마주칠 줄 알았던 그림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 번은 양구에 가야 할 모양인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고, 대신 다른 말들을 붙들었으니 지금은 이로 만족해야겠다. 첫머리에서 읽은 문장.



나이 탓인지 간간이 엄습하는 불면증 때문인지 오밤중에도 무슨 급한 볼일처럼 육십 평생 살아오면서 벌린 온갖 잡동사니들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때가 종종 있다. 어쩌면 그렇게 값나가는 물건이 없는지, 비싸지는 않더라도 높은 안목을 뽐낼 만한 물건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더욱 아니다. 나 죽은 후 자식들로부터 엄마는 참 구질구질한 것도 많이 끼고 살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꼭 필요한 것만 남겨야지 싶지만 그 한계가 모호하다. 그래서 애써 정리를 하고 나면 더욱 개운치가 않아진다. 전집을 낸다는 것도 그런 짓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 박완서. ‘전집을 내면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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