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할 말을 오늘

미래의 독자를 향한 글쓰기

by 시린

마지막 수업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내일’을 주제로 사진을 세 장 찍어보라고 했다. 요즘은 아이들도 대부분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만, 학교나 센터 등에 도착하면 선생님께 맡기거나 사물함에 넣어두어야 한다. 수업이나 프로그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폰 사용을 허락받은 아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나갔다. 그리고 몇 분 되지 않아 돌아왔다.


아이들의 사진은 문제집 일색이었다. 내일은 무슨 수업과 무슨 프로그램과 무슨 테스트가 있다는 거다. 너무 속이 상했다. 다시 찍어 오라고, 더 멀리 갔다 오라고 하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는 걸 억지로 바꿀 순 없다. 그들이 기다리는 내일과 꿈의 모습에, 내 속이 상한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내 마음에 들자고 다른 내일과 꿈으로 바꾸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꿈 좀 안 물어봤으면 좋겠다고, 아이들의 하소연을 많이 들었다. 그도 이해가 간다. 나라도 싫을 거다. 겪어본 것도 별로 없고 뭘 좋아하는지도 아직 모르는데 꿈이 뭐냐, 좋아하는 게 뭐냐,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대면 말이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십 년 후 나의 모습’이니,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내 모습’ 따위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말문이 막혔다. 융통성 없기로는 유난한지라 대충하는 대답으로 얼버무리고 싶진 않고, 생각해둔 건 없고, 떠올려 보려 해도 후딱 떠오르지는 않고...


나는 일을 닥쳐서 한다. 걱정도 닥쳐야 한다. 내일 일은 내일 하고, 내일 걱정도 내일 하자는 인간이다. 느긋한 건 맞는데, 낙천적이냐 하면 그렇진 않다.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최악의 경우를 염두하는 편이다. 기대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을까, 좋은 일이 있으려나, 기대하는 법이 없다. 내일도 오늘이랑 같겠지. 일 년 후, 십 년 후라고 뭐 다르겠어? 지금이랑 비슷하겠지, 그런다.


기대를 안 하니 크게 실망하는 법도 없다. 한데 재미도 없다. 하루가 어영부영 지나간다. 맨송맨송하게, 그날이 그날처럼. 인간은 변덕스럽다. 평온한 하루를 원하지만 몇 날 몇 달 자극 없는 생활을 하다 보면 자극을 받고 싶어진다. 뭔가 화끈한 일 없을까?


어릴 때는 외부에서 자극을 찾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 보거나, 새로운 일을 해 보기도 하고, 이도저도 안 되면 매운 음식을 폭식하거나 술을 죽자고 마셨다. 뒤가 좋지 않다. 폭음은 자극이라기보다 자학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봤다. 기대가 안 되면 가정은 어떨까. G시인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방전된 자신감도 채울 겸, ‘수상소감’을 써 보기로 했다. 아카데미, 콩쿠르, 문학상... 대외적으로 치러지는 시상식에 참가하는 수상 후보들은 소감 원고를 미리 준비한다. 멋들어진 ‘한 마디’를 남기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수상을)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이 대사가 사라질 날도 머지 않았다.


학교 백일장 정도 나가봤지, 글을 어딘가에 공모해 본 적은 없다. 수상할 리 없으니 말할 리 없는 소감을 쓰는 건 낭비적이다. 그런데도 써 본다. 언젠가 만날 독자를 위해서. 그를 위해 글을 쓰기 위해서. 쓰기는 외로운 길이고, 기대라는 등불 없이 계속 걷기엔 너무 아득하다.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해야 할 일들만 지겨울 때, 가정의 말을 불씨 삼아 내일을 비춰 보자. 예상하지 못한 잉걸을 온전히 기쁨으로 쬘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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