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이들을 향한 글쓰기
G시인에게 푹 빠져 그의 책만 읽을 때였다. 시인이 사는 고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늘 간다는 바다에 앉아 그가 지은 시를 읽고 싶었다. 그러면 맞아떨어진 주문처럼 시인을 소환해 주지 않을까, 그 정도 기적쯤은 일으킬 힘이 시에는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가 보지는 않았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봐? 아니, 일어날까 봐. 만약 시인을 만나 그를 알아본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것 같았다. 읽던 시집을 내밀어 사인이나 받는 게 고작일 터.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만 있고 한 편 써내지 못하던 때였다. 그래서였다. 그의 시와 닮은 시를 쓰고 싶었다. 시인을 만나게 되면 나도 시를 쓴다고, 당신 덕에 쓰게 됐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야 진짜 기적이 완성될 것 같았다.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시인을 두고 그렇게 공상만 하며 해가 간다. 무언가 계속 끄적이고는 있는데 이를 시라고 할 수 있을지. 언제부터 말이 시가 되는지 모르는 채 말만 쌓여 간다. 시인을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는 상상은 위안이다. 상상만으로 글이 될 리 없는데 의외로 도움이 된다. 써지지 않는 글을 붙들고 괴로워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벌떡 일어나고 싶을 때. 습작노트를 들고 누군가를 찾아가는 상상을 해본다. 조금 더 잘 쓰고 싶다, 조금만 더 써 봐야겠다, 나를 다독여 앉힌다.
내가 어릴 때는 낭독회나 북토크 같은 게 별로 없어서 작가를 만날 만한 기회가 없었다. 가끔 TV 문학 프로그램에 나오는 문인들을 보는 게 다였다. 작가는 연예인 같은 존재였다. 팬들에게 웃으며 사인해 주는 연예인. 무대에 오르고, 많은 사람 앞에서 강연을 술술 잘도 하는 건 당연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만 있었지, 작가라는 단어를 떠올려본 적 없는 건 그래서다. 끔찍하게 낯을 가리는 내가 연예인이 될 수는 없으니까. 궁금한 건 있었다. 팬들이 내 작품을 좋아해 주고, 내 책을 들고 찾아온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봤다. 이번에 만날 사람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서점에서 어떤 이가 내가 쓴 책을 읽고 있다, 기분이 어떨까. 혹시 나를 알아본다면, 말을 걸어온다면,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을까?
철 없던 때의 이기심으로 잃은 사람들이 있다. 후회도 했지만 떠난 이들을 찾을 방법은 없었다. 제대로 사과하지 못한 이들과, 사과 받지 못한 이들이 있다. 미련을 붙드는 건 어리석지만 아주 가끔, 내 글이 멀리까지 가 그들을 불러오는 상상을 한다. 그러고 나면 빈 종이를 마주할 용기가 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