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만 붙인다고 질문이 아니다

사진의 예의

by 시린

여행객들에게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사람들, 혼자서 둘이서 여럿이서 사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번 새삼스레 쳐다보게 된다. 사람이 많네, 많이들 놀러 왔나 봐, **철인가 봐, ** 보러 왔나 봐, 중얼거리게 된다. 오늘도 바다 앞에서, 돌담 앞에서, 동백꽃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보며 중얼거린다. 여행 온 사람들이 많나 봐, 동백 철인가 봐.


한때 dslr 카메라가 유행했고, 지금은 누구나 고성능 카메라가 내장된 스마트폰을 가졌다. 그래서? 모두가 다 사진작가가 되었다. 그런 거 같다. 산, 바다, 도시, 마을, 미술관, 서점, 식당, 카페 어딜 가든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은 오래전 사라진 속담이다. 식사도 경치 구경도, 찍는 게 먼저다.


사진이 우선이라고? 이 신기한 현상은 또 다른 희한한 현상을 불러왔다. 사진이 권력이라도 되는 양, 사진 찍는 사람이 권력자라도 되는 양 사람들이 행동하게 된 거다.

“카메라는 무기입니다.”

한창 촬영에 재미를 느낄 무렵, 워크샵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카메라는 무기다,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고 경계한다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 가볍게 들어넘겼다. 지금은 그때보다 조심스럽다. 낯선 동네에서는 더 조심한다. 메모리가 채워지고 카메라가 낡아갈수록 ‘무기’라는 말의 의미를 체감할 수 있어서다.


작업용 카메라는 대개 크고 무겁다. 거기에 망원렌즈라도 달면 보기만 해도 묵직할뿐더러, 아주 ‘비싸’ 보인다. 이런 ‘대포’를 맞닥뜨리면,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묘한 표정이 되곤 한다. 반은 웃고 반은 찡그린 채로 굳은 채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거나 포수의 뒤로 돌아간다.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는 거다.

권력이니 무기니, 과장 좀 그만하라고? 당연히 과장이지. 한데, 카메라 든 사람을 피하거나, 불편해하거나 두려워하기까지 하는 건? 그건 과장이 아닌가? 카메라를 든 사람이 찍거나 찍지 않을 사람, 사진에 등장시키거나 빼버릴 사람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내리는 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프레임 밖으로 알아서 빠져 주거나 기다려 주는 건?


어제 잠깐 외출했다 들어오는 길이었다. 마침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하며 천천히 올레에 들어서는데 말소리가 들렸다. “좀 비켜 주실래요?” 돌아보니 트레킹 복장의 두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돌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데 내가 프레임에 걸린 모양이었다. 나는 아무 대꾸 없이 두 사람과 차례로 눈을 맞추고, 고개를 돌려 폰 메시지를 읽으며 좀 전까지 걷던 속도 그대로 마당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들에게 당신들이 찍으려는 건 내 집이 아니냐고 물었어야 했을까? 내가 내 집에 있으면서 어느 자리에 어떤 포즈로 있을지 지시를 받아야 할 이유를 아무래도 모르겠으니 말이다.

다시 떠오르는 게 있다. 내 카메라 스트랩은 검정색이다. 카메라를 사면 따라오는, 모델명이 적힌 끈이 아니다. 카메라를 처음 샀을 때, 스트랩도 새로 사는 게 좋겠다고 한 건 Y선생님이다. 빨간색이 너무 눈에 띈다고, 멀리서도 ‘O백만 원짜리 카메라’인 게 보인다고 했다.


카메라가 무기일 수 있다면, 고가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을까. 없다고는 못 할 것 같다. 운전이나 주차를 할 때, 옆의 차가 페라리라면 멀찌감치 떨어지는 건 나만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니까 관두련다. 터놓고 부탁하련다. 나도 예의를 갖출 테니 당신도 그래 달라고. 앞에 사람이 있다면 찍어도 되겠냐고 묻거나, 기다려 달라. “비켜 주실래요?”는 질문이 아니라 명령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명령을 하는 건 사실상 폭력이다. 그래서 싸움이 일어나는 거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 당신이 예의를 갖춰 사진을 찍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묻는다면, 흔쾌히 허락하고 비켜주기까지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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