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약병의 기억

활명수와 할머니

by 시린

단 걸 안 좋아하는 식성은 아빠를 닮았다. 어느 해였던가, 고모가 멀미약과 함께 내민 박카스를 마다하자 왜냐고 물었다. 달착지근해서 싫어해요, 하니 지 아빠 쏙 뺐다며 혀로 웃는다. 잠시 후 터미널 화장실에 다녀온 아빠가 고모 손의 박카스를 보고 고개를 맹렬히 저었고, 우리는 공범의 웃음을 키들거렸다.


아빠만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시외버스가 출발하자 기다렸다는 듯 말을 뱉었다. 박카스랑 활명수는 쳐다보기도 싫다! 달아서 싫은 게 아니었다. 약국에서 파는 조그만 병 음료가 질색이었던 거다.


냉장고는 항상 자양강장제니 소화촉진제니 하는 병들로 차 있었고, 할머니는 그것들을 물 한 모금 마시듯 수시로 먹었다. 안 먹으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약이 떨어지면 큰일 난다고, 마지막 병을 따기 며칠 전부터 사오라고 성화였다. 그건 약이 아니라 음료수라고 말해봤자 화만 돋굴 뿐이라 식구들은 일찌감치 체념하고 부지런히 약국을 들락거렸다. 어쩌다 들른 친척들이 마실거리를 찾다 병을 꺼내는 것도 사고였다. 한 병 비면 그날로 한 박스를 채워 놓아야 했다.


할머니는 몇 해 전에 돌아가셨으니 엄마와의 짠한 추억 정도로 떠올릴 수도 있을 텐데. 조그만 음료병 하나에 감정이 울컥벌컥하는 게 기억이라고, 화르륵 성이 났다 급히 짠해지는 종잡을 수 없는 속도에 멀미가 나는 게 마음이라고, 박카스가 싫다고 멀미약까지 안 먹은 걸 후회하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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