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사라졌다

옆집 사람은 어떻게 살까?

by 시린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이제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이사떡도 더불어 사라졌다. 이제 아무도 이사 왔다고 떡을 돌리지 않는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아파트가 아니라도 도시살이의 모양새가 거의 그렇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라는 말은 어디에 붙여도 틀릴 일 없는 만능 답변이다. 이웃과 소원한 상황에도 꼭 맞게 달라붙는다. 아침 일찍 일하러 가고 늦게 들어오는데, 새벽같이 학교며 도서관 갔다 오밤중에 들어오는데, 휴일에도 가봐야 할 데가 잔뜩이고, 집에서도 할 일이 태산인데, 한집 사는 식구 얼굴 보기도 힘든데 딴 집 사람을 어떻게 봐? 지당한 말씀이다. 그밖에도 이유는 많다. 방 하나씩 빌려 살던 쪽방촌에서는 싫어도 옆방 사람들, 윗층 사람들과 알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집이 커지고 벽은 높아지니 옆집과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졌다.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안전 문제도 있다. 옆집 사람이라 해 봐야 완벽한 타인이다. 그가 어떤 사람일지는 누구도 모른다. 범죄자일 수도 있고, 아니래도 어느 순간 저도 모를 분노 장애를 일으켜 마침 옆에 있는 사람을 해코지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거 아닌가. 층간소음이 발단이 되어 범죄를 저지르고 만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주민이다.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라, 나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없는 척 조용히 지내는 게 상책이다. 이웃과의 소통은 사치다.


쓸쓸함까진 아니지만 아쉬움을 느낄 때는 있다. 택배 말고 소포를 보내던 시절, 집에 사람이 없으면 옆집 윗집에서 맡았다 주곤 했는데, 그 김에 저녁 반찬도 얻어 가고, 주인집 할머니 흉도 보고 했던 게 사극에나 나오던 일 같다. 요즘은 집에서 얼굴 마주치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집배원이고, 메시지를 가장 자주 주고받는 사람이 택배 기사다. 하루에 받은 유일한 메시지가 문 앞에 ‘도착한’ 상품의 인증샷인 날도 많다. 많은 이들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음을 안다.


도시살이니까. 시골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시골살이를 동경할 때, 친절한 옆집 아주머니와 동네 어르신들을 떠올리곤 하지 않나. 대문 없이 살았다는 제주는 한 동네 살면 다 괸당이라고도 하고. 그러니 제주는 좀 다르지 않냐고? ‘나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어떤 사람은, 어떤 집은, 어떤 동네는 이웃과 친하게 지낸다. 그렇지 않은 동네, 집, 사람도 있다.


제주에서 처음 살았던 집은 농가주택의 밖거리였다. 안거리에 주인 아주머니가 살았다. 이사 온 날. 짐 정리를 하다 새벽에 잠이 들었다. 몇 시간 후, 머리를 두고 자던 벽의 창문이 벌컥 열렸다.

“가스 완!” “?!!.....?????” “가스 이서야 밥 먹지!”

주인 아주머니가 새벽같이 가스를 배달시켰던 거다. 안팎거리 사이의 물부엌 쪽으로 난 창문을 두드렸는데 답이 없으니 뒤쪽으로 돌아 안방의 창문을 열었던 것. 그 창을 잠그지 않은 건 보일러가 놓인 뒷벽을 향하고 있어 사람이 다닐 일이 없어서였는데, 이건 예상 못했다.

“가스!!” “예....예!!”


거기서 4년을 살았는데, 거의 매일같이 창이며 문이 벌컥벌컥 열렸다. 아주머니는 밭에서 뭔가 수확해 올 때면 절대 그냥 들어가지 않았다. 미깡, 무, 파, 양파, 간낭, 세오리 한 다발을 내밀며 어떻게 먹으라고 요리법까지 알려주었다. (사투리 작렬이라 옳게 들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없을 땐 문간에 두고 갔다. 잠결에 문소리가 들린 것 같아 나가보면 새시문 안에 식게 퇴물이 쟁반째 놓여 있기도 했다.


지금은 사정이 좀 다르다. 밖거리에 세들어 사는 건 똑같은데, 안거리에는 주인 아저씨가 혼자 지낸다. 잔디 마당에 우영팟이 있는 옛날 집인데, 아저씨는 특히 잔디 가꾸는 데 끔찍하다. 우영팟도 혼자 일구는 밭치고 규모가 상당하다. 쑥쑥 크는 고추며 배추, 오이 등을 볼 때마다 장에 내다 파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다 처리하는지 궁금하다. 물어본 적은 없지만.


이사 왔을 때 친구들이 제일 먼저 물어본 게 시골서 사는 게 무섭지 않냐, 였다. 시골집이라서, 주인집이랑 같이 살아서 불편하지 않냐고 했다. 전엔 나도 원룸과 아파트에서만 살았고 이웃이라 할 만한 관계는 없었다. 당연히 생소하고 불편한 게 여럿이지만 못 살 정도는 아니다. 생각지 못했던 좋은 점도 있다. 눈인사만 나누는 사이라 해도, 혼자 살 때보다는 뭔가 안심이 되는 게 있다.


딱히 불편이라기 뭐하지만 편하지만도 않은 점도 있다. 밖에서 마당 쓰는 소리가 들리면 괜히 눈치가 보인다던가, 그런 일들. 그리고 또 하나. 역시 안심도 불편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우영팟이 궁금하다. 늘 뭔가 자라고 있고, 혼자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다. 수확한 배추며 무는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집에 산 지 이 년이 넘었지만 나눠준다거나 빈말이라도 먹어보라 하는 법이 없다. 주인 아저씨의 땅이고, 아저씨의 세오리고 부루긴 한데, 보통 같이 먹자고 권유쯤은 하지 않나? 예전의 하숙집이나 셋집 주인들은 밭에 있는 옥수수나 깻잎 따위를 아무 때고 따다 먹으라고 했으니, 비교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식탐이 많은 편도 아니고, 못 얻어먹어서 억울한 것도 아니다. 그냥 좀 궁금하다. 아저씨가 인색한 사람인 건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한 건지. 집주인과 세입자일 뿐이고,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다만, 뭐랄까, 아무래도 우리가 좋은 ‘이웃’은 아닌 것 같다.


옛날이 나았다고 말하려던 건 아닌데,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이라는 건 뭘까, 문득문득 생각하게 된다. 관계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이라면, 서로에 대한 예의라는 게 존재할 테다. 의무는 아니지만 마당 청소는 같이하는 게 예의일까? 내가 먼저 좋은 이웃으로서의 예의를 갖추지 않아, 아저씨도 꼭 그만큼의 거리를 두는 걸까? 낼모레가 설인데, 명절마다 돌아오는 고민에 심란하다. 선물까지는 아니더라도 명절 음식이라도 넉넉히 만들어서 나눠 먹어야 하는 건지, 쓸데없는 오지랖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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