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이 일상어가 될 때
서류 작성을 하는데 필요한 사진이 안 보인다. 컴퓨터에 저장을 안 해뒀나? 폰을 뒤지다 보니 엉뚱한 사진 한 장이 눈에 든다. 이걸 왜 찍었더라? 그때의 상태로 몸을 보내는 데 2초쯤이 걸렸다. 맞아, 그랬지! 퍼뜩 떠오른 게 있었고, 뭔가 쓰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고, 사진을 찍어 메모를 해 둔 거다. 그래놓고 잊었던 거다.
고등학교 특활 수업이었다. 첫 시간이었고, 처음 가본 학교였다. 당연히 긴장했고, 시간도 넉넉하다 못해 너무 많이 남았다. 건물에 들어가 일단 화장실부터 찾았다. 저기쯤에 있으려니, 싶은 복도 끝에서 화장실 표지를 찾긴 했는데, 문을 열려는 순간 움찔했다. 걸음을 세운 건 문에 붙어 있는 ‘학생 출입 금지’라는 글씨였다.
몇 초간 한쪽 발뒤꿈치를 든 채로 생각했다. ‘교사 전용 화장실’이라는 거군. 그러니 학생은 사용하지 말라는 걸 테고. 한데 왜? 화장실에서 마주치면 민망할까 봐? 몰래 욕이라도 하고 싶을 때 못 할까 봐?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다. 그게 뭘까? 남-녀도 아니고 교사-학생으로 사용자를 구분하는 이유가?
복도 저쪽에서 교사인 듯한 사람이 한 명 걸어오기 시작했다. 계속 이렇게 화장실 문을 째려보며 서 있을 수는 없다. 게다가 나는 ‘외부인’이다. 괜한 오해라도 사면 서로 난처해진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생각은 나중에 하자. 마음과 달리 동작은 그리 빠르지 못했다. 들어가도 괜찮은지 확신이 없어서였다. 교사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인 거 같다. 나는 교사인가? 수업하러 온 강사인 건 맞다. 하지만 교사는 아니다. 그럼 교사 전용 화장실을 못 쓰나? 아니, 그렇다고 한다면 학생 화장실도 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기타인 전용이나 외부인 전용 화장실이 따로 있을까?
무슨 범법행위를 하는 것도 아닌데, ‘금지’라는 단어가 가하는 힘을 온몸으로 받는 중이었다. 머리 삼십 센티미터쯤 위에 떠있는 생각 덩어리가, 보이긴 보이되 내려오지도 사라지지도 잡히지도 않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천천히 잡아 보자고, 나오면서 사진을 찍어두었더랬다. 매주 한 번씩, 수업이 있던 여덟 번에 걸쳐 불편한 마음으로 화장실을 사용하며 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기억 하나를 반복해서 떠올렸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학년별로 건물이 나뉘어 있었다. 교실 외에 교무실과 양호실, 특활실 등은 모두 본관에 있고, 2층 복도에서 이어지는 구름다리가 4층짜리 학년 동과 본관 3층 건물을 연결했다. 각 건물 층마다 화장실이 있었다. 여기서 문제-학생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어디일까?
학생들은 교실 건물에 있는 화장실만 사용할 수 있었다. 본관 화장실은 ‘교사 전용’이었다. 그러니까 특활실이나 도서실에 있다가 화장실에 가려면 2층의 구름다리를 이용하거나 1층의 본관 뒷문으로 나갔다가 교실 건물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방법으로 이동해야 했다. 다시 문제-교사 전용 화장실은 누가 청소했을까?
학생들이 했다. 본관 복도도, 양호실도, 교무실도 청소는 모두 학생 몫이었고, 화장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번을 정해서 청소를 하고, 담당 선생님께 검사를 맡아야 했다. 몇 달에 한 번 돌아오는 화장실 청소가 억울하단 생각은 안 해 봤다. 그런데 딱 한 번, 이런 일이 있었다. 오후 특활 시간이었는데 점심 도시락이 체했는지 속이 몹시 울렁거렸다. 곧 토할 것 같아 본관 옥상에 있던 특활실에서 3층까지는 내려왔는데, 도저히 계단 한 층을 내려가 몇십 미터를 더 가지 못할 것 같았다. 눈앞의 ‘교사 전용’ 화장실을 보지 않으려 잠시 애써봤지만 다른 수가 생각나지 않았고, 이미 얼굴은 식은땀 범벅에다, 목 안에서 시큼한 맛이 났고, 결국 문을 열고 들어갔고, 나오다가 윤리 선생님과 마주쳤다.
사정을 설명하는 내 목소리는 그닥 당당하지 못했고, 별 추궁 없이 보내준 선생님의 표정도 좋진 않았다. 내가 들은 말은 딱 두 마디였는데, 첫 마디는 ‘너 왜 여기서 나오니?’였고 두 번째는 ‘알겠지만, 다음부턴 쓰지 마라.’였다. 특활실에 돌아온 날 보고 다들 얼굴이 허옇다고 했다. 울렁거림은 좀 가라앉았지만 식은땀도 여전했다. 윤리 선생님은 이제 속은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학교니까. 학교란 규제와 금지로 이루어진 곳이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얼른 졸업만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학교 밖도 기대했던 만큼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금지와 명령에 부딪친다.
나는 늘 궁금한 게 많았다. 오만 가지가 왜 그럴까 궁금했고, 왜인지 물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하지 말라는 게 많다. 뭔가를 규제하려면,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쯤은 알려줘도 좋지 않나? 왜-‘왜’는 늘 말대꾸고 반항인가. 왜 명령은 그렇지 않고, 질문이 다툼의 원인이 되는가. 질문은 반드시 불복으로 귀결되는가. 나는 절대적으로 당신에개 복종해야 하는가. 이제 아이가 아니고 학생이 아닌데도 나는 툭하면 명령을 받는 입장이 된다. 인구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서로의 온갖 행동을 금지하고자 한다. 아무데서고 한 바퀴 둘러보라. 벽에 쓰인 텍스트, 크게 걸린 글씨들의 상당 부분이 명령어다.
명령어가 불편하고 왜인지 물어보게 되는 건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어서다. 나는 습관적으로 명령을 받는 쪽에 선다. 어쩌면 별일 아니다. 그 자리에서 떠나거나,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니라고 무시하면 된다. 아니면 명령을 하는 쪽에 서거나. 굳이 자리에 서서 왜인지 묻고, 불편함을 표현해서 다툼을 유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도 있다. 텍스트를 못 읽거나 안 읽거나 못 읽은 척 지나치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나 또렷한 명령어를 만나면 나는 또다시 학생의 입장에 선다. 나에게 한 말이 아니고, 나와 상관없는 말일 수 있다. 하나, 상관없는 입장이어서 할 수 있는 말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예컨대, 학생의 왜?는 말대꾸와 반항일 뿐이므로 돌아오는 건 답이 아니라 화뿐이니까.) 게다가 숱하게 물었지만 아직 한번도 답을 들은 적이 없다. 생각 덩어리는 여전히 머리 삼십 센티미터 위에 떠서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계속 물어보고 있다. 왜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