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나무 앞에서 쓰다
5월 8일은 어버이날이고, 지금 타는 차를 산 날이다. 그러니까 자동차보험 만기일이다. 그리고 어제는 일요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도 5월 8일 일요일이었는데.. 그곳으로 가보았다.
2016년 5월 8일 일요일. 모두 제주시에 살던 우리는 서귀포시 서호 호근동에서 만났다. 흩어져서 사진을 찍고, 식당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다시 흩어져서 사진을 찍었다. 골목에서 마주치면 괜히 킥킥대며 손을 흔들었다. 방금 헤어져 놓고 뭐가 그리 반가웠던지.
동네는 귤꽃향 밤꽃향이 가득했다. 어느 골목에서 무너질 듯 무겁게 꽃을 단 밤나무와 마주친 우리는 입을 딱 벌리고 한참을 머물렀다. 잠시 후 아래쪽이 시끌시끌하더니 동네 삼춘들이 걸어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슴에 꽃을 달고 있다. 복지회관 어버이날 행사가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낯선 우리를 봤다.
어서 옵디까? 제주시서 완마씸. 멀리서도 왐신게. 무시거 찍읍니까? 저희는 마을 사진을… …이런 때 대답을 도맡는 선생님께 맡기고, 숫기 없는 우리 몇은 슬금슬금 다른 데로 갔다.
이겸샘이 찍은 이 사진은 3년 후, <서귀포시 중산간마을>의 표지가 되었다. 책을 볼 때마다, 사진을 볼 때마다 들여다 보고 또 들어가 보게 된다. 저기에 우리가 있었지, 아련하기도 하고 조금 더 기다렸다 더 많이 찍어둘 걸, 후회도 된다.
이제 저 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짙은 그늘에는 늘 차 몇 대가 대어져 있곤 해서, 담과 나무를 온전히 찍고 싶어 몇 번이고 다시 가곤 했다. 이제 몸통이 잘려나간 나무는 볕을 가릴 가지와 잎이 없다. 몇 번을 가도 차는 한 대도 없고 뻥 뚫린 하늘 아래 넝쿨식물만 무성하다. 사진 찍는 것도 내키지 않아 지나치기만 하다가 6년 만에 카메라를 들고 간 거다. 어버이날 행사는 없는 듯, 골목은 고요했다.
사람도 동네도 변한다. 낡은 것은 무너지고 새 것이 높고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길을 넓히느라, 더 큰 집을 짓느라 더 많은 면적이 필요한 사람들은 바다를 메우고 산을 깎고 나무를 벤다. 사람이 모든 다른 것들의 자리를 뺏는다.
땅도 산도 나무도 다 사람의 소유다. 자기 소유물을 맘대로 하는 걸 무어라 말할 자격조차 우리에겐 없다. 서운한 감정조차 내게 허락된 게 아닌 거다.
하나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곱곱하다. 자리 때문이 아니라면 왜 잘랐을까. 뭔가에 방해가 되거나 위험한 나무가 아니었다. 혹시 벼락이라도 맞았던 걸까? 부러진 기둥이 쓰러져 위험할까 봐 잘라준 걸까? 그리 보기엔 자른 면과 남은 부분이 너무 깨끗해 보이지만. 혹시 냄새 따위가 이유일까? 나도 밤꽃냄새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도 아무래도 아닌 거 같다. 이렇게 오래, 크게 자랄 때까지 있다가 이제 와서?
동네 삼춘들과 말을 나눌 수 있는 넉살이 있으면 좋을 텐데. 꼭 물어보고 싶다. 듣고 웃을 수 있는 이유라면 좋겠다. 벤 나무로 시집 가는 딸의 가구를 만들어 줬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