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이름

아까시 앞에서 쓰다

by 시린

서울촌년은 꽃이름을 노래로 배웠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은 아니지만 학교 꽃밭에서 채송화도 봉숭아도 찾고, 선생님이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어울리게 핀 나팔꽃도 찾아 익혔다. 개나리 노란 꽃그늘과 아기 진달래, 삼천 리 강산에 무궁화까지 일사천리로 외웠다.


문제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시작됐다. 누나가 좋아하던 과꽃까지는 성당 꽃밭에서 간신히 찾았는데, 과수원길에서 딱 막혔다. 동구는 뭐고 과수원은 뭐하는 데며, 아카시아는 대체 어느 나라 꽃이란 말인가. 엄마 일 가는 길에 피어 있다는, 향기 좋고 맛마저 좋다는 찔레꽃은 대체 어느 동네 길가에 피어 누구의 간식이 되는가.


그러니 한참 후 수학여행에서 이루어진 아카시아와의 상봉은 감격 그 자체였다. 논개가 적장을 끌어안고 투신했다는 진주성이 온통 달큰한 꽃향기로 가득했었다. 안내해 주던 해설사 선생님에게 물으니 어디서 왔길래 아카시아도 모르냐며 우리보다 더 놀랐다. 내 친구들도 나와 수준이 어슷비슷하여, 이름만 들어본 아카시아가 이런 생김새에 이런 향인 줄은 몰랐던 거다. 가위바위보 해서 잎 따는 놀이도 그날 첨으로 해봤다. 재미는 없더라.


아카시아는 아카시아가 아니고 진짜 이름은 아까시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어렵게 배운 이름을 두고 이제 와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건 배신 같아 내키지 않았다.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그냥 아카시아라고 불렀다. 내가 지금껏 기억하는 진주성의 향기는 ‘아카시아향’이니까.


인간의 감각이란 재미있다. 이름을 알고 난 후로는 신기하게도 공기 중의 아카시아향을 맡을 수 있었다. 도시의 오월, 나의 오월은 아카시아와 라일락향이었다.


섬에 오니 달랐다. 제주의 오월은 미깡꼿과 먹쿠실꼿내(귤꽃과 멀구슬꽃향)다. 아까시와 라일락 나무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미스킴 라일락 화분 정도 본 게 다였다.


그러다 며칠 전 아까시를 봤다는 제보를 받고 섬 반대편에 다녀왔다. 알려준 대로 공원묘지 길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길가엔 찔레꽃만 무성했다. 멀구슬도 찔레도, 제주 와서 배웠다. 먹어보지 않아서 맛은 잘 모르겠고, 듣던 대로 향은 좋더라. 묘지길에는 늦게 배운 찔레꽃향만 진동하다가, 여기가 아닌가?..걱정되기 시작했을 때 극적으로 아카시아향이 섞여들었다. 이럴 때마다 왜 눈물은 나는 걸까?


너무 늦게 와서. 거의 지고 남은 꽃잎마저 후득후득 나리고 있었지만, 향기만 무성했지만. 이제야 만난 나의 오월이 반가워 웃었다. 울다가 웃다가 꽃에게 말도 거는 미친년이 되었다. 꽃이름도 모르는 미친년이 흰 꽃잎 입에 물고 맴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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