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과 비듬의 나날

‘개조심’ 앞에서 쓰다

by 시린

H와 3년을 함께 살았다. 세상 귀찮은 게 많은 이였다.

귀여운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썼는데, 길에서 강아지만 보면 끌어안고 난리여서 떼놓기 바빴다.

K네 개가 새끼를 낳았을 때, 나는 H가 바로 한 놈을 데려올 줄 알았다. 한데 빈손으로 왔길래 물었더니 딱 잘라 말했다. “남 새끼일 때나 귀엽지!”

귀찮음이 귀여움을 이겼다.


몇 달 후, 집 앞에 버려진 강아지를 발견했다. 분리수거함 안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회식이라 늦는다고 한 H에게 전화했더니 대뜸 소리쳤다. “미친년! 그 개새끼 데리고 들어오기만 해!”


술김에 흥분한 것도 화내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 말투에 비하면 다정한 표현이었다. H는 내가 아는 이 중 가장 화려하고 섬세한 욕을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묘사는 생생했고 오감을 자극했으며 핍진성은 더할 나위 없었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낭랑한 욕변설은 신기와도 같아서, 누구든 듣는 즉시 빙의되었다. 진짜로 재봉틀로 꿰매진 듯 꾹 다물린 입을 손으로 더듬고, 눈알은 금방이라도 빠져 몸의 다른 구멍을 찾아가 박힐 듯 요동을 쳤다.


함께 산 3년 동안 그 기술을 배워보려고 꽤 애를 썼었다. H의 욕 발성은 막힌 데 없이 시원시원했다. 듣기만 해도 이럴진대 직접 소리할 수 있으면 얼마나 후련할까 싶었다. 부러움을 솔직히 고백하고 도움을 요청하니 그도 흔쾌히 수락했더랬다. 그러나 가시나, 간나 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라는 나와 H는 태생부터 달랐다. 그 천재성은 타고난 것이어서, 범인들이 아무리 노력한들 따라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실은 속정깨나 깊은 사람이었던 그가 짬짬이 욕 대본과 단어장까지 만들어 주었지만, 낭독도 반복 학습도 효과가 없었다. 3년의 지극정성이 결실을 맺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쉽다. 얼마 후 H가 새 방을 얻어 나간 진짜 이유도 그거였는지 모른다. 보답받지 못하는 인정은 결국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강아지 어떻게 되었냐고? …?…강아지! 할 수 없이 담요와 먹을 것만 갖다 줬다.

욕신에게 빙의되기 싫어서 말을 들었지만 ‘날 두고 가지 마세요’ 눈빛 공격의 여파도 만만치 않았다. 잠자리가 영 불편해 뒤척거리다 겨우 잠들려는데 비틀비틀 귀가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누워있다가 욕실에서 들리는 우당탕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몸도 못 가눌 만큼 취하면 어떡해! 투덜대며 문을 여니, H가 샴푸 거품 휘날리며 탈춤 추는 대걸레를 붙들고 버둥대고 있었다. H를 먼저 재우고 강아지를 헹궈 말려주었다.


피부병이 있는 강아지였다. 가려워 긁을 때마다 비듬이 눈처럼 날렸다. H는 화장대에 소복이 내려앉은 비듬을 칠색팔색 털어내며 향수를 살포했다. 개새끼, 개자식, 에미애비도모르고빌어먹는걸뱅이자식, 거지발싸개팔팔끓인물을바께쓰로퍼먹여서풍선을만들어날려버려도시원찮을새끼, 하면서 이름도 안 지어주었다. 그래도 용케 똥오줌은 치웠다. 자기의 주사와 쏘맥새끼(쏘맥을 처음 만들어낸 새끼)를 저주하면서. 강아지는 이름 없는 삶, 정확하게는 욕으로 불리는 생활에 익숙해져 ‘개’까지만 듣고도 달려오는 처세술을 터득했다.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H는 오만때만 사람들에게, 불문곡직 말머리에 ‘개’를 붙여댔으니까. 자기를 부르는 개새끼인지, 네가지 없는 인간의 자식을 일컫는 개자식인지 분간하긴 어려웠을 테다.


욕과 비듬의 날들이 평화롭게 흘러갔다. 하루는 셋이 동네를 산책하다가 한눈에도 족보깨나 있는 듯한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과 마주쳤다. H는 하네스 줄을내게 넘기더니 한참 동안 그 개를 따라다녔다. 저러다 집까지 따라가겠다 싶어 부르자 마지못해 돌아왔다. 쟤 참 예쁘게 생겼다, 내 말에 줄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그래, 내 새끼보단 좀 못하지만.”

자기 입으로 개새끼 에미, 개 같은 년이 된 H는 스스로에게 빙의한 욕신의 진면목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화려한 욕사여구를 시전하며 집으로 걷기 시작하자, 새끼가 따라가며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멍멍 개소리 추임새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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