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으로

치과에 다녀와서 쓰다

by 시린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의 이를 빼고, 뚫린 데가 아물기를 몇 달 기다렸다. 그리고 기둥이라는 것을 넣는 시공을 했다. 턱뼈에 피스를 박는 드릴 소리가 귀 안에서 들렸다. 드르르르 드르르르르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박아넣은 기둥에 지붕을 씌우는 건 네 달 후에 경과를 보고 할 거라 했다. 보통은 두 달 정돈데, 뼈가 많이 약하시네요. 의사의 말이었다. 젊은 사람의 뼈는 대개 두 달이면 아문단다. 어느 정도의 나이를 두고 젊다는 표현을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가 저절로 빠지는 나이도 아닌데 드문 경우라는 뜻이었을 테다. 무르고 약한 뼈를 타고났다는 거다.


따지고 보면 이를 빼야 했던 이유도 잇몸이 튼튼하지 못해서였다. 잇뿌리에 생긴 염증을 치료할 방법이 달리 없었던 거다. 오랫동안 잇몸이 붓고 아파 고생했다. 병원에서는 매번 이상이 없다고 했다. 밥을 못 먹을 지경이 되어도 괜찮다고 했다. 이에 이상이 없었던 건 맞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곳의 염증이었으니까. 수년 동안 수십 군데 병원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찍고서야 완전히 망가진 잇몸을 발견했다.


수술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듣고 물었다.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다른 이와 잇몸에도 생길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양치를 잘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애초에 뼛속에 어쩌다 문제가 생겼는지도 알 수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자주 오셔야죠. 자주 검진해야 이상을 빨리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은 전혀 대답이 되지 않았다.


억울하다. 약한 잇몸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통증과 치료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게. 보험도 안 되는 어마무시한 병원비가. 더 억울한 건 이런 일이 늘상 벌어진다는 거다.


선천적으로 기능이 약한 신체다. 단순히 운동신경이 없고 몸치라는 정도면 귀엽지만 속속들이 약해빠졌다. 눈이 나쁘다는 걸 처음 안 건 다섯 살 때다. 소아 시력 교정 시기를 놓쳤다고 아쉬워할 수도 없다. 아이의 시력 검사는 학교 신체검사나 되어야 했던 때니. 그냥 그러려니 산다. 일곱 살 때 처음으로 무릎 통증이 왔다. 어디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굽히지도 못하고 엉엉 울었다. 병원에서는 이상 없다고 했다. 꾀병은 아닌 것 같으니 일종의 성장통일 거라고 자신 없게 말했다. 맑기만 한 날씨에 무릎이 쑤시면 다음날 틀림없이 비나 눈이 왔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신경통이 생긴 거다. 정 견디기 힘들 때만 물리치료로 견디곤 했는데, 스물 여덟 되던 해에 용하다는 의사가 말했다. 퇴행성 관절염이네요. 정말이지 조숙한 무릎이다.


중학교 때 허리디스크가 생겼다고 하면 책상에 너무 앉아 있었나 보다고들 생각하지만, 의사는 속지 않았다. 허리가 너무 약해요, 이 키를 지탱할 수 있는 척추뼈가 아니에요. 아직 진단할 단계는 아니지만 몇 년 안에 틀림없이 디스크가 된다며 자신만만하게 예언했다. 딱 일 년 걸렸다. 시키는 대로 운동도 하고 책상에 앉지 않고 서서 책을 보기도 해봤지만 막지 못했다.


만성위염도 역류성 식도염도 급성신장염도, 생활습관이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라(좋지도 않지만) 위장의 기능이 원체 약한 게 원인이라 했다. 푹 쉬고 스트레스받지 않아야 한다는 만병통치 처방을 매번 받았다. 한 번 시작되면 며칠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하게 하는 편두통도 특별한 이상과 원인이 없다.(통증은 증상일 뿐, 발견되지 않으면 이상이 아니다.)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나가면 화상을 입고, 며칠 연속으로 바르면 선크림 트러블이 생긴다. 한여름에 긴소매를 입어도 툭하면 햇빛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연고 처방을 받으러 병원에 가면 벌레를 잘 타니 관리를 잘하라 한다.(어떻게?)


이사해서 한라산에 처음으로 올라갔을 때, 무릎 통증이 오래 가기에 병원에 가니 연골이 찢어졌단다. 무리해서 과격한 운동을 하면 그럴 수 있단다. 같이 올라간 친구는 치마에 샌들 차림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뭐 달라진다고. 몇 년 후에 짧은 영실 코스로 시간을 두 배 들여 설렁설렁 올라갔다 왔는데, 이번에는 발목이었다. 접지른 것마냥 부었는데 안 넘어졌다고 하니 한의사가 신경질을 내며 침을 마구 찔렀다. 그 후로 몇 년째 한라산에 안 갔다.


허리디스크로 꼼짝할 수 없어 입원한 적이 있다. 첫 교정시간에 물리치료사가 무릎을 잡더니 어? 일 초 끊었다 말했다. 관절이 엄청 약하네요. 무릎이 항상 아파요, 지금은 허리 땜에 입원했지만. 혹시 손목 굽히면 엄지가 팔에 닿지 않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는 한숨 비슷한 웃음소리를 냈다. 우리 아내가 이렇거든요. 선천적으로 근력이 없는 몸이에요, 평생 고생하는.

옆에 있는 사람도 같이 힘들고요, 라는 말에 울고 싶어진 건 옆에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관리라는 말에 예민하다. 건강관리, 몸매관리, 외모관리, 자기관리.. 건강하지 못한 것도, 뚱뚱한 것도, 동안이 아닌 것도, 스펙이 빈약하거나 친구가 얼마 없는 것 모두, 관리를 못 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 분위기가 싫다. 새 옷을 사면 태그부터 자르고 빨아 입는다. 가끔 내복을 입을 때나 집에서는 솔기가 바깥으로 가도록 옷을 뒤집어 입는다.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나. 가려움을 참다 참다 시내에 딱 하나 있는 전문 피부과에 가면 긁어서 그런 거란다. 뭔가 바뀌지 않았어? 짜증이 폭발하면 기어이 피를 본다. 아 몰라 어차피 낫지도 않을 거, 긁을 테야 긁어버릴 테야. 피부가 얼룩덜룩한 건 순전히 손톱을 제대로 관리 못 한 탓이다.


그러니까 말이지. 이렇게 삐뚤어진 성격은 선천적으로 부실한 신체에서 비롯된 거다. 타고난 심보라는 거지. 보통에 한참 못 미치는 신체 능력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남들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남들보다 빨리 지친다. 매일 매 순간이 피곤하다. 포기하는 게 많아지고, 점점 빨라진다. 근성 없고 불만 많은 사람인 게 들통나 점점 외톨이가 된다. 아 됐어, 다 귀찮아.


늘 오해를 사지만, 딱히 불평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천만다행으로 타고난 게 있으니, 이런 몸에 딱 맞는 속도 감각을 가졌다는 거. 느리고 게으른 성격 덕에 날마다, 아 몰라 다 귀찮아, 를 외치는 삶이 그닥 괴롭지 않다. 한 달 내내 처박혀 책만 읽어도 좋다. 하고 싶은 일이래 봐야 읽고 쓰는 정돈데, 글은 앉아서도 누워서도 읽을 수 있고 쓸 수도 있다. 조금 더 튼튼한 몸이었다면 조금 더 건강한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야 있다. 하나 아직 견딜 만해서, 늘 어딘가 아프고 삐뚤어진 사람의 이야기를 구상하는 쪽으로 마음을 둔다. 타고난 운명과 수명을 어쩔 텐가. 누군가는 체념이라 하지만, 약하고 불편한 몸으로 지금껏 살아오면서 터득한 나름의 낙관이다. 게다가 체념을 체념한다 해서 아픈 게 안 아프게 되지도 않는다. 지금보다 더 아프고 불편해질 삶일 테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선천적으로 삐뚤어진 심보를 이용해 체념으로 꿈을 삼았다. 잔뜩 꼬아 삼았으니 더 질긴 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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