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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수 Apr 16. 2022

지금 이대로

툴리오 호다, <나에게 키스하지 마세요: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개구리 왕자는 모두에게 익숙한 이야기다.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통해 개구리가 인간이 되는 이야기. 징그러운 개구리에게까지 입을 맞출 수 있는 엄청난 사랑으로 여주인공이 보상을 받는 이야기! 부와 명예, 잘생긴 결혼상대인 백마탄 왕자까지 완벽한 판타지 로맨스가 아닌가. 2009년에 개봉된 디즈니 만화영화 <공주와 개구리>에서는 중요한 메인 테마가 비틀린다. 여자 주인공 티아나가 저주에 걸린 왕자를 구하려다 휘말려 저 역시 개구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거치고도 개구리 부부로 행복한 삶을 사는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장면에서는 진정한 사랑의 키스로 인해 인간으로 돌아온다. 비틀린 테마는 다시 원전으로 회귀하고, 아름다운 두 인간은 아름다운 인간에게 응당 주어져야 할 삶을 살게 된다.


판타지를 보면서 ‘이것이 현실이 아니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다정한 판타지가 아니라 슬픈 판타지가 된다. 나에게 개구리 왕자 이야기는 언제나 슬픈 판타지였다. 개구리가 어때서? 그리고, 개구리가 인간이 되는 것을 즐거워한다니? 어쩌면 고집불통으로 여겨질 질문들이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개구리는 징그럽고, 그래서 그 상태를 벗어난 인간들은 언제나 행복하다. '원래의 나'라는 정체성이 침해당했다고 볼 수야 있겠지만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갈망하는 이야기들이 반복해서 읽히고 또 쓰이는 것을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징그러운 개구리라는 개념이야말로 참 게으르게 느껴진다. 이런 생각들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툴리오 호다의 그림책 <나에게 키스하지 마세요:지금 이대로가 좋아요!>(글로연, 2012)는 분명히 반갑고 통쾌한 이야기다.


우리의 주인공은 어느 연못의 개구리다. ‘엘레나’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그는 백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중요한 축제가 마뜩잖다. 엘레나를 제외한 다른 개구리들은 당연히 잔뜩 기대에 차있다. 왕자들이 나타나 자신만의 개구리를 찾아 입을 맞추면 그들은 인간─물론, 빼어나게 아름다운 공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받기 위해 치장하는 개구리들은 엘레나에게 너도 좀 꾸며라 무어라 말하지만 엘레나는 별 생각이 없다. 그는 멋진 왕자님이나 낭만적인 결혼생활보다 연못의 풍경, 벌레 잡아먹는 일이 좋다. 인간이 아닌 개구리로서의 삶이 좋다! 엘레나에게 개구리는 추하거나 벗어나야 할 존재가 아닌,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인 것이다. 그에게는 미래의 광명보다 현재가 소중하다. 신부감을 찾으려는 왕자들 역시 엘레나의 시야에선 매력적이지 않다.


그런데 웬걸, 상상도 못한 존재가 그의 시야에 들어온다. 자신과 똑같이 주류에서 벗어나 홀로인 왕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엘레나의 왕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모두가 인간이 되어 성으로 떠난 바람에 외로운 엘레나에게, 그의 현재를 긍정하고 동경하는 왕자가 나타난 것이다. 연못의 아름다움을 아는 인간이라니! 너무나 반가웠던 엘레나는 왕자에게 입을 맞추고, 왕자는 이내 개구리로 변한다. 오래된 법칙이 뒤바뀐다. 엘레나가 인간이 되어 함께 연못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두 마리의 개구리가 즐거이 살아간다는 결말이 그려진다.


로맨스는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일까? 더 확실히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로맨스’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할까?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날 거라는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오래된 환상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왕자님이 없더라도 공주님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권리를 말하며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변화가 반갑기도 하지만,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멋진 세상에 도달한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인기를 얻는다. 현재를 넘어 환상으로 향하는 부러움의 이야기. <나에게 키스하지 마세요>는 그 부러움을 멋지게 거절한다!


멋진 집, 멋진 차, 부유한 생활은 경제성장을 아직도 부르짖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들이다. 황금으로 빚은 궁전은 어찌되었든 최고의 보상이며, '인간'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선물이다. 햇빛이 내리쬐고 조용한 바람이 부는 연못은 가끔 놀러가 휴식을 취하는 정도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맑은 하늘은 인간의 피로를 씻어주는 것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2022년은 도시의 삶을, 인간중심적인 삶만을 광고한다. 이곳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교묘하게 구석으로 밀려들어간다. 하지만 '인간 아닌 개구리' 엘레나의 행복을 가늠한 툴리오 호다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근 몇 년간 반짝이며 떠오른 낱말 중 '소확행'이란 표현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힘겨운 일상은 유지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으므로 확실히 얻을 수 있는 행복에 일상의 에너지를 걸어두는 것이다. 소확행은 그렇기에 피곤한 일상의 감초를 넘어 만족스러운 일상 그 자체가 되지 못한다. 소확행의 성립을 위해선 불만족이 선행된다. 열정적인 삶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피로감을 위로하는 행복. 그것은 소소한 성취와 소소한 행복이 “진짜 노력”이 아니며 결국은 행복하지 않은 상황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묘한 메시지를 묵과한다.


<나에게 키스하지 마세요>는 이 거대한 메시지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왕자’와 ‘공주’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이 아닌 존재도 행복을 찾을 수 있겠느냐는 엉뚱한 질문. 그 행복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이다.


오래된 동화에서는 마녀가 인간을 두꺼비로 만드는 것을 저주라고 여긴다. 하지만 몸통부터 개구리로 변해가는 그림책 속 왕자는 참 평안해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성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에, 개구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뒤처지는 일일까? 엘레나의 일상은 현재인 동시에 그의 ‘미래’다. 연못의 정취를 느끼고 여유롭게 바람을 즐기며 사는 일은 누군가에게 가치 없는 일일 것이나 동시에 우리가 잃고 있는 지속가능성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을, 삶을, 사회를 지속하기 위해서 이성적 판단 반대에 있는 즐거움을 말하는 개구리들을 우리는 얼마나 빠르게 판단하고 있을까. 그들의 징그러움을, 무책임함을 우리는 얼마나 신중히 고려해볼 수 있을까? 인간들의 세계에서 떠나온 개구리가 말한다. <나에게 키스하지 마세요>! 나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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