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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 어머니상

by 권옥순

꿀 세 숟가락과 화분 한 숟가락을 드시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는 엄마. 단순한 습관을 넘어 건강 유지의 비결이며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다짐이기도 하다. 엄마의 기도 제목 1순위는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천국 가게 해주세요.”라고 늘 기도하셨는데 그 소망이 엄마의 삶 곳곳에 배어 있다.

엄마는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당신의 기도 제목뿐 아니라 나라와 교회, 자녀, 손주, 증손자들까지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매일 기도하신다. 그 기도가 언제나 우리의 삶을 보호막처럼 감싸준다.

내가 출근하고 혼자일 때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신다. 넓은 거실을 열 바퀴 돌고, 운동기구에 앉아 발을 구르며 거실 밖 풍경을 즐기신다. 창밖으로는 야산이 보이고 산책로에는 어른들의 느린 발걸음, 젊은이들의 힘찬 발걸음,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보며 생명의 활기를 느끼신다. 창밖 가로수 메타세쿼이아 꼭대기에 커다란 까치둥지가 있다. 가끔 까치가 나타나면 엄마는 반가운 마음에 구르던 발을 멈추고 얼른 일어나 손짓을 하신다. “까치야, 까치야, 이리 와.”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듯 까치가 둥지에 앉으면 반갑게 손뼉을 치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신다. 하루는 내가 퇴근하고 현관문을 여니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왔나 했더니 까치랑 얘기하고 계셨다. “저것 좀 봐. 까치가 날 보고 인사를 해. 얼른 와 봐”까치가 가버릴까 봐 얼른 와서 보라고 나를 재촉하며 혼자서도 심심해하지 않는 고우신 엄마.

한참을 놀던 까치가 후루룩 날아가 버리면 못내 아쉬워하며 방으로 들어가 뜨개질을 하신다. 언니에게 예쁜 실을 많이 사 오라고 해서 한 코 한 코 수세미를 뜨신다. 곱게 뜬 수세미가 하나둘 완성되면 문갑 위에 색깔별로 주욱 늘어놓고 마치 부자라도 된 듯 흐뭇해하신다. 하루도 쉬지 않고 정성껏 뜬 수세미가 백오십 개 정도 되면 상자에 담아 고향 교회를 비롯해 작은 교회에서 전도할 때 쓰라고 택배로 보낸다. 믿음이 돈독한 엄마는 직접 전도하지 못하니 이렇게라도 하고 싶다며 뜨개질을 하셨다. 100세를 바라보지만 눈도 밝고, 귀도 어둡지 않으시기에 가능한 일이라 감사하다.

엄마는 매일 성경을 소리 내어 읽는데 언제 한글을 몰랐던가 싶을 정도로 실감 나게 읽으신다. 엄마의 성경책은 손에 침을 발라 책장을 넘겨서 퉁퉁 불어 두툼하고 많이 닳았다. 그뿐 아니라 중요한 부분에는 노랑․분홍 형광펜으로 주 욱 죽 줄을 그어 거의 모든 곳이 알록달록하다. 증손자가 오면 다윗, 솔로몬, 사무엘 등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옛날 얘기처럼 들려주신다. 나는 일 년에 한 번 읽기도 어려운 두꺼운 성경 책을 매년 두 번씩이나 읽으시는 엄마가 존경스럽다.

엄마는 영월에서도 한참 시골로 들어가는 가재골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셨다. 오빠들만 학교에 보내고 딸이라고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가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말도 못 하셨다고 한다. 그것이 한이 되었으나 40대에 교회를 다니면서 더듬더듬 성경을 읽으며 한글을 조금씩 깨치셨다. 덕분에 읽을 줄은 알지만 쓰지는 못하셨는데 98세에 용기를 내어 손녀딸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한글 쓰기를 시작하셨다. 굵고 투박한 손가락으로 깍두기공책에 꾹꾹 눌러 가며 배움의 기쁨을 누리셨다.

아버지가 60세에 천국에 가신 뒤 홀로 다섯 남매를 바르게 길러 주신 엄마께 99세 생신 달, 백수연 감사 예배를 드리며 ‘장한 어머니상’을 만들어 드렸다. 상이라고는 처음 받아 본 엄마는 틈만 나면 읽고 또 읽으신다. 그동안의 노고를 다 보상받으신 듯,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씀하시며 기뻐하신다. 오래 걷지는 못하지만 혼자 걷는 데는 문제가 없으시다. 약이라고는 혈압약만 드시며 지금까지 건강했던 비결은 첫째, 규칙적으로 매일 소리 내어 성경 읽기, 둘째, 소식(小食), 셋째, 운동이다. 치매도 없이 그리 곱게 생활하시더니 100세가 되시던 2월, 배가 아파 병원에 다녀온 뒤, 기도 제목처럼 집에서 천사 같은 모습으로 평안히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

평생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신 엄마! 그 헌신과 사랑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빛이 되어 우리의 삶을 비추고 있다. 성경에서 지혜를 찾고, 나누기를 좋아하며 사랑과 감사로 건강하게 백수(壽)를 누리신 모습은 엄마의 장한 삶의 여정을 완성한 한 편의 작품이다.

엄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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